5일 검증결과가 발표된 일본의 역사 교과서를 분석한 역사 학자들은 일본이 지난 2001년판보다 좀더 ‘세련되고 과감하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임나일본부설에 근거해 백제와 신라가 일본에 조공을 바쳤다는 기술은 삭제되는 대신 조선이 중국으로부터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받았다는 대목은 조공을 바쳤다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일개 주장이나 비공인 학설에 불과한 것은 삭제해 일견 개선됐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한반도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약화시켜 일본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은근하게 풍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보수 우익의 본령인 자민당 핵심세력, 즉 지배계층이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교과서 왜곡에 집착하는 이유와 그 종착점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익 집권층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형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주류인 30~40대 패전세대는 정치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고 사회문제에도 무관심하다.
이들은 ‘다케시마’보다는 ‘욘사마’를 더 잘 아는 세대이다. 보수 우익을 기반으로 하는 집권세력 입장에서는 이 같은 비정치적 계층의 확대는 반세기 집권신화에 위협이 됨은 물론이다. 집권층이 깊숙이 개입된 역사왜곡에는 신세대 일본인의 새로운 역사인식이 없다면 집권 연장은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역사기술에서 ‘영광의 정복사’가 ‘불행한 침략사’로 격하되는 이른바 ‘자학사관’으로는 지지층을 결속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주일 미국대사까지 역임한 라이샤워 하버드대 교수는 ‘일본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저서에서 일본은 자연환경과 풍토ㆍ지정학적인 이유로 인해 필연적으로 ‘외부’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12~13세기에야 비로소 중앙집권체제를 이뤘고 그 이전에는 일개 정권들의 연합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통일 집권층은 오랜 분열 이후에 민중의 기대를 저버리고 내부수습을 위해 칼끝을 외부로 돌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강경 발언에 대해 ‘국내용’으로 폄훼한 적이 있다. 그러나 패전 이후 일본의 집권세력의 역사왜곡과 망언들은 보다 치밀하게 계산된 ‘국내용’에 다름이 아니다. 그래서 한일현안을 대처하는 데는 일본의 다수인 비정치적이고 양심적인 일본인을 자극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