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도서정가제만 답일까


지난 1월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이 발의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에는 '모든 도서는 정가의 10% 이내에서 할인 판매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원천적으로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취지다.

사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간한 지 18개월 미만의 도서에만 19% 이상 할인을 금지했을 뿐 그 기간이 지나면 할인폭에 대한 규제가 없다. 게다가 실용서, 학습서, 정부구매 도서는 처음부터 제한이 없다. 그래서 학습서로 편법 등록하거나 여러 도서를 세트로 묶어 할인율에 대한 제한을 비껴가는 경우가 많아 덤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단 출판업계는 이번 개정안을 반기는 분위기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최근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대형 출판사들의 도서 덤핑 판매에 대한 자정을 촉구한 바 있고 새로 취임한 한국출판인회의 박은주 회장도 '도서정가제'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한국서점조합회는 도서정가제가 지역 서점의 경영에 도움을 주고 좀 더 다양한 도서를 취급할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사석에서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소형 출판사와 지역 서점을 걱정했다. "새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규모가 작은 출판사일수록 매출에 악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요. 특히 동네 구석으로 몰려 명맥만 유지하는 지역 서점으로 독자들이 몰릴 것 같지 않습니다."


그간 책값이 낀 거품이 빠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 버티는 쪽은 아무래도 대형 출판사라는 얘기다. 온ㆍ오프라인 서점에서의 마케팅도 대형 출판사에 유리하다. 또 같은 값이면 다양한 종류의 서적에 넓고 편리한 공간을 제공하는 대형 서점이나 집에서 간단하게 주문할 수 있는 인터넷 서점의 매력이 크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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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도서정가제로 업계의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독자들은 우선 같은 책에 더 많은 돈을 치러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독서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고 그래서 좀 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지 않냐는 주장도 나온다.

한 서점업계 관계자는 "출판사는 문고판ㆍ양장판 형태로 책값을 이원화해 선택의 폭을 넓히고 정부는 학교 도서구입 예산 및 지역 도서관 확대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독자층을 넓혀가는 노력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법안은 발의됐지만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는 올가을이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출판ㆍ서점 업계가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업계와 당국 등 관계자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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