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사회대타협, 더 미룰순 없다] 勞도 使도 법과 원칙을 생명선으로 삼자

<3부-1>한국형 모델을 찾아라-노사 동반의 시대로<br>'떼법'·정서법등 낡은 관행 완전히 몰아내고<br>使도 勞에 양보만 강요말고 동반자로 끌어안아<br>임금동결·전환배치등 상생 분위기 살려 나가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은 며칠 전부터 새 봄을 맞은 듯 모처럼 활기와 생동감이 넘쳐나고 있다. 지난 1월 출시된 신차 ‘모하비’가 기대 이상의 인기를 끌면서 계약이 밀려드는데다 일감이 없어 놀던 생산2라인 직원 96명도 모하비 라인으로 옮겨 본격적인 업무를 개시했기 때문이다. 기아차 노사는 3일 우여곡절 끝에 ‘카렌스’ 생산라인에 근무했던 직원 96명을 모하비 생산라인으로 전환 배치하는 데 합의했다. 일부 노조원의 반발도 있었지만 결국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노사 상생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모하비 라인으로 전환 배치된 A씨는 “‘자동차쟁이’가 자동차를 만들어야지 손 놓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 못살겠더라. 이제야 출근하는 맛이 난다”면서 미소를 머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교육장으로 출근해 하루하루를 보내왔던 그는 “직원들은 월급을 더 많이 받고 회사도 잘 팔리는 차를 더 많이 만들어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산업현장 곳곳에서 노사 상생의 희망찬 기운이 싹트고 있다. 안팎으로 어려운 경제여건을 극복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자면 무엇보다 노사가 한마음으로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월 취임사에서 “이제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동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기업도, 노조도 서로 양보하고 한걸음씩 다가서야 한다”고 밝혔다. 과격한 투쟁은 결국 자멸을 가져오는 만큼 법과 원칙에 따른 노사문화를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때마침 서울경제 취재진이 생산현장의 변화를 마무리 점검하던 10일 희소식이 날아왔다. 동국제강그룹의 5개 계열사 노조가 이날 “회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미래생존을 위해 임단협을 회사 측에 일괄 위임했다”고 밝힌 것. 이로써 동국제강ㆍ유니온스틸 등 계열사들은 최대 14년에서 5년에 이르는 무분규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 LG전자도 최근 대기업 노조로는 처음으로 올해 임금동결이라는 낭보를 전해줬다. 당초 회사 안팎에서는 지난해 양호한 실적을 감안할 때 노조 측이 인상을 요구할 것으로 우려했지만 최근 경영여건과 사회 분위기 등을 감안해 임금인상을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박준수 노조위원장은 “임금인상에 대한 조합원의 기대가 높기는 하지만 임금동결이 기업 경쟁력을 키워 궁극적으로 노조원의 삶의 질을 높일 것으로 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 대기업의 사례는 노사 양측의 양보와 신뢰로 대타협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노사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전자 노사는 임금동결로 절감될 10억원을 사회공헌기금으로 쾌척했으며 기아차 임원들은 노조의 결단에 화답하듯 자진해서 임금 20% 삭감을 결정했다. 어느 일방의 승리나 독주ㆍ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일자리 창출과 사회 양극화 해소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어렵사리 뜻을 모은 것이다. 이에 앞서 한국노총은 대기업 산하 노조에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여유자금을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복지에 투입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사관계 선진화와 경제 살리기에 동참하겠다”고 밝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실제 고임금 정규직 근로자들의 과도한 복지요구가 우리 경제의 해묵은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현대차 등 대기업 노조가 파업을 벌일 때마다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일감이 없어 손을 놓고 있거나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최근 주물업체들이 치솟는 원자재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납품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들고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중소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해마다 치솟는 인건비 등을 감안할 때 납품단가를 현실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면서 “올해 대내외 경제여건이 어려운 만큼 노조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노사문화는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노사관계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친기업정책을 표방한 새 정부에 맞서 총파업까지 경고하는가 하면 적정 임금인상폭을 둘러싼 노사 양측의 입장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올해 적정 임금인상률을 2.6%로 제시한 데 반해 한국노총은 9.1%(비정규직 18.1%)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8.0%, 비정규직 20.2% 인상을 각각 내걸고 있다. 노사가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전반적인 노동정책의 변화나 비정규직, 노조 전임자, 공기업 구조조정 등 첨예한 법제도상의 현안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박종남 대한상의 조사2본부장은 “산업현장에는 아직도 갈등과 불안요인이 도사리고 있다”면서 “이해 당사자 간의 꾸준한 대화와 합의ㆍ설득을 통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본부장은 또 “새 정부는 분배 중시에서 일자리 창출로 노동정책의 기조를 전환했다”면서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지역고용협의체 활성화 등 제도적 지원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새 정부가 일찍이 천명했듯이 법과 원칙에 입각한 노동정책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처럼 ‘떼법’이나 정서에 따라 좌우되는 낡은 관행은 더 이상 산업현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기업들도 모처럼 싹트고 있는 노사 상생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일방적으로 노조의 양보를 강요하지 말고 투명경영과 노조를 동반자로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비정규직 해소나 협력업체 지원, 공헌활동 등 사회 양극화 해소에 발벗고 나서는 것도 일자리 창출에 못지않게 중요한 기업의 역할이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에 의존한 성장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며 “물가가 오르고 중소기업도 힘든 만큼 기업들도 비정규직의 생존권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생현장-부천 노사정협의회
"인적자원개발까지 노사 함께" 부천은 2년째 노사분규 '0' 경기도 부천의 한 병원에서 기계공조 일을 하는 우상현(51)씨는 요즘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우씨는 회사에서 퇴근하면 곧바로 부천근로자종합복지관의 직업훈련센터로 달려가 오후10시까지 PLC 자동제어와 오토캐드, 시퀀스 제어 등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배운다. 젊은 사람도 따기 힘들다는 전기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틈틈이 수전설비ㆍ전기설계 등 실무교육도 받고 있다. 그가 다니는 곳은 부천노사공동직업훈련지원센터. 노사공동희망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곳의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맞춤형 강좌로 이뤄져 조금만 늑장을 부려도 수강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우씨는 "과거 학원에 다니려면 서울 영등포까지 나가야 했는데 이제는 가까운 곳에서 편리하게 실무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아내도 술을 먹지 않고 공부하러 다닌다니 무척 좋아한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부천직업훈련센터는 한국노총 부천지부와 부천상의가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지원하고 기업주에게 양질의 기능인력을 양성ㆍ공급하기 위해 마련했다. 노사가 고용안정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인적자원개발 분야까지 떠맡고 나섰다는 점에서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상빈 부천상의 회장은 "기업의 경쟁력은 현장인력의 생산성과 전문성에 달려 있다"면서 "직업훈련센터가 부천지역의 실업 극복 및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지역은 일찍부터 노와 사,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한마음으로 뭉쳐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고 있다. 과도한 파업이나 노사갈등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누구보다 앞서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총과 상의는 원만한 노사문제 해결과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현장을 찾아 다양한 중재노력을 벌이고 있으며 지역 내 기업들에 대한 공동 현장조사, 워크숍ㆍ간담회 등을 통해 양측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왔다. 특히 지난 1999년 전국 최초로 발족된 부천지역 노사정협의회는 노사 상생의 튼튼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노총과 상의ㆍ부천시청ㆍ공익위원 등으로 구성된 협의회는 산하에 3자 실무위원회를 설치해 민감한 현안이 올라오면 사전에 입장을 조율해가면서 노사갈등 확산을 방지하고 있다. 파업위기로 치닫던 택시업체 노사대표를 한자리에 모아 조정 중재를 시도하는가 하면 정리해고 문제에 부딪힌 기업체를 직접 찾아가 합리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 원만한 노사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4년에는 노사정이 한자리에 모여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고용안정에 노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일자리 및 지역발전을 위한 사회협약'도 맺었다. 부천에서 최근 2년간 단 한차례의 노사분쟁도 발생하지 않은 데는 이 같은 노사 양측의 노력이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김영준 한국노총 부천지부 의장은 "노조도 이제 직업훈련이나 고용안정 등 근로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부천의 경우 노사 양측이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믿고 일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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