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명박 시대] 대권 장정 500여일 돌아보면

"고비마다 승부수" 1년2개월 1위 고수<br>위기때 북핵·아프간사태등 터져 국내외적 환경도 당선 도우미로

[이명박 시대] 대권 장정 500여일 돌아보면 "고비마다 승부수" 1년2개월 1위 고수위기때 북핵·아프간사태등 터져 국내외적 환경도 당선 도우미로 이명박 당선자 "대국민담화" 발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1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이 당선자는 개표상황실을 찾아 "정동영·이회창·문국현·이인제·권영길 후보 모두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그 분들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강조했다. / 한국아이닷컴 김동찬기자 dc007@hankooki.com 홍재원기자 jwhong@sed.co.kr 관련기사 • "위기에 처한 경제 반드시 살리겠다" • 공약집 통해 본 10대 정책 • 각국 반응 • 세계 언론반응 • 시민 반응 "경제 주름살 펴달라" • "韓·中경제협력 탄력 받을것" • 당선 의미는 • MB호 과제 • 'MB 경제' 브레인은 누구 • 'MB 노믹스' 들여다보니… • '사회적 자본'부터 선진화하라 • MB 대선승리 요인은 • MB당선 1등 공신들 • 이명박·삼성 특검 • 당선자 무엇이 달라지나 • 대통령직 인수위 1월초 출범 할듯 • 이명박이 걸어온 길 • 대권 장정 500여일 돌아보면 • 수도권 압승… 전국서 고른 지지 보여 • 이명박 인맥 살펴보니… • "부동산시장, 규제완화 가능성" • 새 정부서 가장 손질 급한 부동산정책은? • 새 정부 부동산 규제완화 강도는? • [대통령을 맞으며] 기업 투자의욕 되살려야 • [데스크 칼럼] 금융시장은 당선자를 지켜본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해 7월 서울시장 퇴임 이후 1년6개월, 500여일 동안의 도전을 통해 대권을 거머쥐게 됐다. 그는 특히 지난해 10월, 추석 무렵부터 1년2개월간 지지율 1위를 고수하면서 대세론을 유지했다. 이처럼 긴 기간 1위를 유지하면서 대선 승리까지 거머쥔 후보는 한국 정치사에 유례가 없다. 그의 대세론은 어떻게 막판까지 유지된 것일까. 기본적으로 그의 ‘경제대통령론’과 ‘경제 살리기 세력과 이념 세력 간 대결’ 구도에서 승리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각종 국내외적 환경이 마치 이 당선자의 대선 승리를 위한 무대장치처럼 맞아떨어졌다. 이 당선자는 또 고비고비마다 특유의 결단력으로 각종 승부수를 써가며 주변의 불리한 환경을 유리한 환경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당선 도운 북핵 실험 등 국내외적 환경=이 당선자가 지지율 1위로 올라선 확실한 계기는 지난해 10월 추석 연휴기간 터진 북한 핵실험이었다. 한반도의 긴장 조성으로 남성 후보의 경륜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높아지면서 유력한 경쟁자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격차를 벌린 뒤 1년1개월 동안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아 ‘이명박 대세론’의 초석이 됐다.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 막판이었던 지난 8월 이 당선자는 BBK사건 등 각종 의혹과 관련한 박 전 대표의 막바지 공세에 시달리면서 지지율 조정이 올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기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이 터지면서 뉴스의 초점이 아프간으로 쏠려 검증 공방을 비켜가면서 결국 경선에서 승리하게 된다. 여기다 이 당선자 자신의 결단력도 돋보였다. 경선 룰 공방으로 당내 대립이 격화되던 5월에는 “박 전 대표 측 경선 룰을 수용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일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당 화합과 지지층 결집, 대선 본선 승리를 위해 던진 승부수였다. 9월에는 변양균ㆍ신정아 스캔들사건이 터졌다. 이때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시작돼 정동영ㆍ손학규ㆍ이해찬 후보가 격돌하던 시기였다. 신당은 이 때문에 경선 흥행에 참패했고 이 당선자를 위협할 수 있는 ‘바람’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당내 반목을 잠재운 박근혜의 ‘아름다운 승복’=이 당선자가 대선에 승리한 데는 박 전 대표의 경선 승복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8월 한나라당 경선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불과 1.5%포인트. 한나라당에서는 “이러다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측은 감정이 격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경선 과정의 일들은 모두 잊자. 이명박 후보님, 반드시 정권 교체에 성공해달라”고 했다. 이 당선자의 지지율이 껑충 뛰었다. 60%를 돌파하더니 며칠 조정을 받아 55% 안팎으로 고정됐다. 이때 이명박ㆍ박근혜 ‘시너지 지지율’은 이 당선자가 대선 본선에서 각종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대세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중간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11월 BBK사건이 본격화된 뒤 갑자기 변수로 떠오른 ‘이회창 바람’을 잠재운 것도 박 전 대표였다. 박 전 대표는 일부 지지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이 당선자 지원유세에 나섰다. 이회창 후보의 삼고초려에도, 연정 제안에도 그의 이명박 지지 입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보수층 결집에 최대 역할을 한 것이다. 이 당선자는 박 전 대표 측이 불편해 하는 최측근 이재오 당시 최고위원을 2선 후퇴시키고 김무성 의원 등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을 중용했다. 박 전 대표와 수시로 통화하면서 그의 심기를 다독여 보수층 결집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이회창 후보의 추격을 잠재웠다. ◇김경준 입국 및 BBK 검찰 수사=이 당선자의 최대 위기는 김경준 전 BBK 대표의 국내 송환이었다. 미국에 수감 중이던 김씨는 지난달 16일 마침내 송환돼 이 당선자의 BBK 공동 설립을 주장하고 나서 ‘반(反)이명박 전선’을 형성시켰다. 이 당선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이 증폭되면서 그의 지지율은 35%선까지 추락했다. ‘김경준 위기’를 잠재운 것은 검찰 수사 결과 발표였다. 검찰은 5일 이명박 무혐의 결론을 내렸고 지지율은 45% 안팎으로 다시 뛰었다. 이 문제는 선거 막판까지 판세를 뒤흔드는 변수로 작용했다. 이 당선자가 “BBK를 설립했다”고 언급한 2000년 광운대 강연 동영상이 나오면서 지지율은 다소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통합신당은 ‘이명박 특검법’을 앞세워 이 당선자를 압박했다. 막판 ‘이명박 동영상’ 논란을 완화한 것 또한 이 당선자 자신이었다. 그는 16일 특검법 전격 수용을 선언한다. BBK 관련 의혹과 무관하다는 확신의 표현이었고 더 이상 지지층의 이탈은 없었다. 한나라당 일제히 환호 제17대 대통령선거 투표 마감시감인 19일 오후 6시 각 방송사의 예측 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가 큰 표차로 타 후보들을 따돌린 것으로 나오자 한나라당사 2층 종합상황실에서는 일제히 환호가 터져나왔다./한국아이닷컴 김동찬 기자 dc007@hankooki.com 입력시간 : 2007/12/1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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