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근대경제 시발점 강화도

서초동에서 일산신도시로 이사한 뒤 강화도를 자주 찾게 되었다. 전보다 거리가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바다를 좋아한 데다가, 인삼과 화문석의 고장으로 이름난 강화에는 바다낚시터 뿐만아니라 국화지ㆍ초지수로 같은 민물낚시터도 많고, 최근에는 화도면 갯가에 해수목욕탕까지 생겨나 더욱 자주 찾는다. 이처럼 강화도를 자주 찾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즐거운 기분만 앞서지는 않는다. 그것은 강화가 모진 시련과 고난의 세월을 이어온 뼈저린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강화도는 제주ㆍ거제ㆍ진도ㆍ남해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큰섬이다. 지리적으로 한강ㆍ임진강 하류에서 서해를 막고 있으며, 연해에는 조수의 흐름이 초속 3m, 간만의 차가 8m에 이르고 암초와 개펄이 많아 천험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강화는 섬 전체가 역사유적지라고 할만큼 곳곳에 수많은 사적이 자리잡고 있다. 강화도는 수천년 전부터 우리 조상이 삶터로 삼아온 곳이다. 청동기시대 족장의 무덤으로 밝혀진 고인돌과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지낸 유적으로 알려진 마리산 참성단이 고대의 대표적 유적이다. 또한 강화도는 고조선 멸망 이후 열국시대로 접어든 뒤 서해 방어와 항로의 요충이어서 백제의 갑비고차, 고구려의 혈구군, 신라의 해구군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삼국혈전사의 무대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39년간 항몽(抗蒙)의 수도였고, 삼별초항쟁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병자호란 때 오랑캐의 발길에 유린당했고, 근대사 여명기에도 외세의 침범에 맞선 방파제 역할을 한 곳이 강화도였다. 강화도는 500년 조선왕조가 마지막 비극의 막을 올린 무대였으며, 근대경제사의 첫발을 내디딘 역사의 무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강화읍 관청리615는 이른바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된 연무당(鍊武堂) 옛터이다. 연무당은 강화진무영 병정들을 훈련시키고 열병받던 곳이었다. 본래 진무영의 열무당(閱武堂)이 있었으나 낡고 비좁아 고종 7년(1870)에 서문안시장을 헐고 연무당을 신축한 것이었다. 연무당 자리에는 ƒ연무당옛터„라고 새긴 기념비 하나만 서 있고, 가까운 관청리 550-1 진무영 자리에는 강화읍사무소가, 523번지 열무당 자리에는 강화농협이 들어서 있어 이제는 옛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1876년 2월 26일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던 그날 일제(日帝)는 갑곶 앞바다에 8척의 군함을 띄워놓고 무력시위를 했으며, 열무당 앞에는 4문의 대포를 걸어놓고 꽝꽝 공포(空砲)를 터뜨리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으니 누가 보든 그것은 수교·수호가 아니라 공갈·협박이요, 진출이 아니라 침략이었다. 이처럼 강제로 맺은 강화도조약에 따라 조선왕조는 몰락의 길로 내려섰고, 이땅은 개명과 수탈로 교직(交織)된 근대사의 문을 열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국제법상 외국과 맺은 첫 통상조약인 이 강화도조약을 신호탄으로 이른바 양화(洋貨)라 불린 서구의 근대적 공장제품이 다량으로 유입, 농업을 경제적 기반으로 한 전통적 가치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왕조시대의 붕괴를 재촉했던 것이다. 일제는 이 기만적 불평등조약을 통해 부산·원산·제물포를 개항토록 하여 경제·정치·군사적 침략의 발판을 구축했으며, 개항지에서 일인들의 토지임차·건축·거주 및 일상(日商)의 무제한 진출과 자유판매권까지 확보, 식민지경영의 첫발을 내디뎠다. 1866년의 병인양요, 1875년의 운양호사건에 이어 1876년 이곳에서 체결된 병자수호조약은 쇄국의 빗장을 벗긴 개항의 서막이 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문호가 개방되자 식민·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하고, 가혹한 경제수탈이 뒤따랐다. 백성에게는 범처럼 무서웠고 외세에는 무력했던 무능한 정부 때문에 비록 국권은 빼앗겼으나 나라의 참 주인인 백성은 눈물겹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이땅을 지켜왔다. 남북이 가로막히기 전까지는 강화 월곶에서 개성 해창리까지, 교동도 인사리에서 황해도 연백군 호동면까지 뱃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끊겼다. 강화수로로도 불리는 염하는 한강 하류가 김포에서 임진강 하류와 합류하여 조강을 이루고, 다시 남쪽으로 흘러 서해로 들어가기 전의 별류(別流)를 가리킨다. 지금은 이 염하 위에 놓인 신강화대교와 제2강화대교가 섬과 뭍을 이어주고 있다. 강화도의 특산품은 고려시대부터 전통을 이어온 화문석, 곧 꽃돗자리와 6·25이후 피란온 개성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강화인삼이 대표적이다. 또 김치를 담그면 맛좋은 강화순무도 있다. 화문석은 강화토산품판매장에서, 인삼은 강화인삼센터에서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강화순무는 인삼센터 건너편 풍물시장에 가면 언제나 살 수 있다. <황원갑(소설가ㆍ한국풍류사연구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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