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09> 큰 관심보다 작은 관심


예전에 기자가 한번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믿으면 오히려 착한 일을 덜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도덕성 평형’ 효과입니다. 풀어보면 인간은 자신이 특정 수준에 오르면 더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존재라는 심리가 바탕이 깔려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착한 일뿐만 아니라, 배려나 감사와 같이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서도 일정 수준과 평형의 논리가 발휘될 것입니다. ‘나는 원래 이만큼이니까’ 하는 생각 때문이죠.


가만 생각해 보면 나한테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을 했는데 기분 좋은 뒤끝을 못 남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밥을 사 주었다거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거나 할 때에도 그가 정말로 선의에서 좋은 행동을 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는 것이죠. 행동경제학자들은 자선조차도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스스로를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착한 일도 그것을 통해 자신이 얻게 될 명성, 스스로 더 나아진 모습에 대한 자부심, 즐거움 같은 것들이 발동한 결과라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진심을 알아보려면 그것이 ‘맨 처음’하는 행동인지를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기독교의 성경에서 말하는 ‘첫사랑’이 중요한 이유도 그 때문은 아닐까요. 무언가 반복될수록 습관으로 자리 잡는 게 사실이니 말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영혼 없는 리액션’으로 매끈매끈한 기성 세대의 커뮤니케이션을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진심으로 위한답시고 좋은 말들을 하지만, 정작 자기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조언일 테니,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베푼 호의조차 습관과 다른 의도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 버립니다. 물론 어른들은 그 또는 그녀에게 ‘개념 없다’고 이야기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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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의를 반복하는 사이에 스스로 착한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 위선을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학자들은 큰 관심보다 작은 관심을 주는데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밥 한번 사주거나 전화 한 통을 걸어 주는 것은 큰 관심입니다. 상대방을 위해 시간과 재원을 할애하는 일이니까요. 또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큰 관심은 희소성이 있는 것이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은 쉽게 받지 못하는, 중요한 호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 스스로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것이죠. 그러나 베푸는 사람 입장에서는 누군가에게 밥을 사고 누군가를 위해 좋은 평판을 남기는 전화가 별로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미 많이 해 본 일’일 테니까요. 그래서 자기 말고도 여러 사람이랑 밥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친구 마당발이야’ 또는 ‘그 친구 참 세상의 흐름을 잘 타’ 하면서 이중적인 평가를 남깁니다. 능력에 대한 감탄과 지조 없음에 대한 비웃음을 동시에 날리는 것이죠. 반면에 지나가는 길에 인사 잘 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걸어주는 ‘작은 관심’은 그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만듭니다. 바쁜 세상에 아무나 할 수 없는 마음의 여유가 담겨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죠. 밥을 사고 전화 한 통 해 주겠다고 상대적으로 지키기 힘든 큰 약속을 하는 사람보다는, 진심 어린 악수가 더 좋은 사람을 만드는 세상입니다. 윤택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미 상대방의 호의가 어디를 겨냥하는지 가늠해보고 소통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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