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직권으로 결정했다. 여당 단독으로 반쪽 국회나마 열리게 된 것이다. 정 의장의 정기국회 가동 결정은 세월호 정국에 묶여 파행을 빚고 있는 정국에 대해 이날 강력하게 정면돌파 의지를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표명이 나온 뒤 이뤄졌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협조하지 않는 한 국회선진화법상 국회 상임위와 법사위에 계류 중인 민생·경제법안 처리가 불투명한 것은 물론 새해 예산안과 세법 심의, 국정감사 등도 극심한 파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누리당 17일부터 단독국회 개시=일단 새누리당은 정 의장이 제시한 일정에 따라 17일부터 단독으로 상임위를 소집해 법안과 예산안 심의에 들어가기로 했다. 또한 오는 26일 본회의도 열어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91개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방안도 정 의장과 협의할 계획이다. 29일에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야당의 협조를 요청한 뒤 10월1일부터 20일간 단독 국감도 불사하기로 했다. 10월22일에는 박 대통령 또는 정홍원 국무총리의 예산안 시정연설을 갖고 10월23~28일에는 대정부질문을 진행한 뒤 10월 31일에 본회의를 갖기로 했다. 이장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국회의장의 고뇌에 찬 결단을 환영한다"면서 "의사일정에 맞춰 민생경제, 규제개혁 법안을 조속히 심의하고 내년도 예산안을 꼼꼼히 챙겨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의장이 주요 정기국회 일정을 9월 말 이후로 잡은 것도 내홍에 휩싸인 새정치연합이 내부 문제를 수습하는 대로 의사일정에 참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수원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장은 어려운 대내외적 상황 속에서 산적한 민생현안을 눈앞에 두고 국회를 계속 공전시키는 것은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것으로 보아 의사일정을 최종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새정치연합 강력 반발로 극심한 파행=하지만 새정치연합이 박 대통령의 세월호 강경돌파 방침에 뒤이은 국회의장의 직권결정에 대해 반발하면서 세월호 특별법이 타결되기 전에는 정기국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극심한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욱이 새정치연합은 박영선 원내대표의 탈당 가능성을 포함해 내홍에 시달리고 있어 현실적으로도 국회 의사일정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박범계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국회의장과 거대 집권 여당이 제1야당이 어려움을 겪는 이 시기에 독단적·일방적 국회 운영을 자행하는 것은 제1야당에 대한 모멸이고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식으로 여당 단독국회만 소집되면 청와대가 국회에 요청한 19개 민생·경제법안 등도 상임위나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는 점에서 국회법상 여당 단독으로는 처리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여야 합의가 안 될 경우 국회의장이 상임위나 본회의 계류법안을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해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통과시킬 수도 있으나 천재지변·전시 사변·국가 비상사태 등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야당 참여 끌어내기 위한 정 의장의 수= 따라서 정 의장이 직권으로 정기국회 일정을 결정한 것은 일단 정기국회를 가동하는 모양새를 띠면서 야당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를 소집했으나 야당이 불참해 정 의장으로서도 정기국회 직권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 부여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국회의원 세비 반납을 강하게 요구할 정도로 정치권을 비판하자 정 의장도 더 이상 결심을 미룰 수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의장의 직권 결정은 회기 전체 의사일정을 작성할 때 운영위와의 협의를 거치도록 하되 만약 협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의장이 의사일정을 임의로 결정할 수 있게 한 국회법 제76조3항에 따른 것이다. 정 의장은 이날 국회 상임위원장과 여야 간사에게 주요 민생·경제법안 심의와 국정감사 준비 작업에 협조해달라는 친전을 보내는 한편 국회 상임위 수석전문위원들을 불러 회의를 열고 각 상임위 활동의 정상화를 위한 실무 지원에 차질이 없게 하라고 지시했다.
◇정치권에서는 야당 리더십 회복 뒤 원내투쟁 전망=정치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이 워낙 완강해 결국 새정치연합도 끝까지 정기국회 일정을 거부하기보다는 지도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서서히 원내 투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10월1일부터 예정된 국정감사의 경우 청와대와 정부·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고 내년도 예산안도 올해부터 11월30일까지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 12월1일 본회의에 자동상정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번 정기국회는 '부실 날림 국회'가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