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심층진단] 고용·투자확대 내세우더니… 조세정책은 기업 세부담만 늘려

■ 거꾸로 가는 세제개편<br>경영여건 날로 악화되는데 대기업 세제혜택 줄이면 협력업체까지 영업 차질<br>R&D 세액공제 강화 등 전경련, 세제 개편 건의



#요즘 국내 대기업들은 투자계획을 점검할 때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정부가 규모가 큰 기업을 중심으로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 등에 대한 세제감면 혜택을 축소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탓이다. 엔저 압박에 따른 한국산 제품의 수출 가격 경쟁력 악화를 만회하려면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ㆍ생산을 위한 투자를 독려해야 하는데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의 2013년 세제개편을 앞두고 있는 국내 산업계의 표정이다. 경기가 나쁘면 기업들의 세부담을 덜어줘 투자의욕을 고취하는 게 상식인데 정부 정책은 시류를 거스르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무엇보다도 대기업 등에 대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축소하려는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은 재계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기존의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가 주로 대기업들에 수혜를 주고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고용창출투자세액제도로 전환한 것이 근래의 일이다. 그런데 이제 갓 출범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제도가 제대로 안착하기도 전해 금새 다시 고쳐 세제혜택을 더 줄이겠다는 것은 상식 밖의 세제운용이라는 게 산업계의 시각이다. '고용률 70%'를 국정 과제로 내세우면서 일자리 늘리기를 최우선으로 하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상충된다.

실제로 오는 27일 한국조세연구원 공청회를 통해 발표되는 정부의 비과세ㆍ감면 개편 방향만 해도 기업의 고용ㆍ투자 촉진보다는 법인세 세수 확보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 규모에 따라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혜택 수준을 차등화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대기업일수록 세금을 덜 깎아주겠다는 뜻이다.

전자업계의 한 대기업 임원은 "대기업이 설비나 R&D 투자를 망설이게 되면 협력업체들이 줄줄이 영업차질을 빚게 되고 이는 고용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을 줄이면 부작용이 협력 중소기업들에도 미친다는 사실을 정부가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부가 기업 투자에 대한 비과세ㆍ감면 정책을 구조조정하려는 취지 자체가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산업계에서는 그동안 정부의 정책취지와 전혀 상관 없는 영업비용 등까지 설비투자나 연구비용인 것처럼 속여 회계처리한 뒤 부당하게 세금을 피하는 관행이 고질적으로 퍼져왔다. 다만 이 같은 부조리를 개선하기에는 정책 타이밍과 속도가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산업계의 목소리다.


국내 설비투자지수는 지난해 4월부터 1년이 넘도록 계속 추락하고 있고 올해 하반기에는 미국 등의 양적완화 조치 축소가 예상된 마당에 기업의 세부담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느냐는 뜻이다. 심지어 베트남과 같은 후발 개발도상국에서조차 최근 법인세를 낮춰주는데 정부의 세제정책은 '공약 이행을 위해 세수를 확보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지나치게 교조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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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일 "R&D, 고용 관련 공제 축소로 기업 투자 위축이 우려된다"며 정부에 세제개편 관련 건의서를 제출했다. 전경련은 건의서에서 "기업 투자환경 개선을 위해 연구 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 및 고용창출 투자세액공제를 지속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진정했다. 이어 "사회공헌 사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제 구축이 필요하다"며 기업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부한 부동산 등에 대해 재산세 부담을 덜어줄 것을 요청했다.

건의서에는 특히 기업에 법인세 최저한세를 적용시 R&D 세액공제와 R&D 설비투자 세액공제는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언이 담겼다. 연구용 출장비와 회의비, 퇴직급여충당금전입액을 연구인력 개발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시켜달라는 요청도 포함됐다.

전경련은 아울러 기업의 상시근로자 수가 0.5명만 줄어들어도 기본공제를 받지 못하도록 한 현행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산정방식의 개선이 필요하고 연말 시효를 맞는 연구인력개발 준비금의 일몰 연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곁들였다.

산업계에서는 또한 고용파급 효과가 큰 서비스 산업들이 각종 세제 혜택에서 소외 당하지 않도록 제도개편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항공업체의 경우 항공기에 투자해 고용을 유발하더라도 고용창출 투자세액공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 업체는 의료ㆍ정보서비스업 등 특정 사업 분야에 해당하지 않으면 투자나 일자리를 늘려도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대상에서 배제되는 탓이다. 반면 제조업은 사업 분야에 관계 없이 포괄적으로 공제혜택을 누리고 있다.

한국항공진흥협회의 한 관계자는 "항공운송업계는 지난 5년간 약 9조5,000억원의 항공기 투자를 단행해 4,200여개의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었다"며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제도 범위에 항공운송업을 추가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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