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를 온통 헤집어놓은 문화방송 ‘PD수첩’의 취재과정을 보면 마치 조폭(조직폭력배)을 연상케 한다. 연구에만 몰두해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연구원들을 협박과 공갈로 몰아부친 것은 취재의 도를 넘는 일이었다.
직업의 생리상 기자는 특종을 갈구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일상적인 취재 외에 정보원 확보에도 공을 들인다. 인간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 내부의 내밀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을 뒤바꿀 만큼 엄청난 제보라도 그 보도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다칠 것 같으면 취재기자는 고민하게 마련이다.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흘리는지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역정보에 이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까발리고 보자' 언론행태 문제
기자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는 윗선과 상의한다. 회사의 명운이 걸린 사안에 대해서는 편집국장은 물론 경영진과도 대책을 숙의한다. 자칫하다가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은 물론 경제적인 보상까지 책임져 회사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대한 견제가 심하고 인권의식이 높아진 최근에는 보도에 더욱 신중을 기울이고 있다. 인권침해 등의 소지가 있는 기사에 대해서는 고문변호사 등과도 상의한다. 그러나 PD수첩팀이 과연 이런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이다.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들린다. 단순히 해당PD를 문책하는 선에서 그칠 문제는 아닌 듯싶다.
내부통제도 문제려니와 PD수첩팀이 취재 접근에서부터 기사를 내보내기까지의 과정도 너무 비인간적이었고 부도덕했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취재원에게 취재목적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그들은 줄기세포연구팀에 생명공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거짓으로 접근했다.
연구에만 몰두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젊은 과학자들의 취약점을 이용했다. 뿐만 아니라 “황 교수를 죽이러 왔다”며 겁주고 협박까지 했다고도 한다. 과거 고문경찰이나 검찰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조폭들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번 PD수첩 사건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국가이익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까발리고 헤집기부터 하는 언론의 무책임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줄기세포는 우리나라가 건국 이래 유일무이하게 세계를 주도하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공동연구과정에서 불만이 있을 수 있고 연구의 주도권을 빼앗긴 외국이나 관련대학, 기업들의 시샘을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문제다. 설령 황 교수팀이 연구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해도 감싸주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닐까. 진위조차 가리지 않은 채 사건이 터지면 앞뒤 가리지 않고 침소봉대하는 우리 언론의 치부가 PD수첩에서 재연됐을 뿐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폭로부터 하고 보는 언론들은 PD수첩을 질타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종국에는 인체에 별 탈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던 우지라면ㆍ만두속ㆍ김치보도 등으로 공장과 가게가 문을 닫아 얼마나 많은 업체와 종업원들이 피눈물을 흘렸는가. 국가이익과 국민의 알권리 사이에서 해외언론들이 왜 국가이익을 더 중요시하는지 되새겨야 한다.
경솔한 '아마추어리즘' 반성을
PD수첩사건은 또 연륜과 경험보다는 젊은 패기만을 믿고 개혁지상주의에 빠진 젊은이들이 빚은 변고라고 본다. 문화방송은 이번 사건까지 포함해 올들어 무려 일곱 차례나 국민에 대해 사과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개혁성향의 젊은 노조위원장 출신이 경영을 맡으면서부터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철도청을 개혁한답시고 원로 기관사들을 대거 정리한 후 탈선사고가 부쩍 늘어난 적이 있다. 문화방송의 잦은 실수가 혈기만 앞세운 아마추어들의 개혁지상주의 부산물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PD수첩 스캔들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현장에서 자꾸 내몰리는 어르신들의 중요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