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새 정부의 함정… 99%와 51% 차이

'고속'보다 '지속성장' 중요… 지나친 성장기대는 독 될 수도<br>불가능 공약 과감히 폐기하고 합리적 실천 의지 보여야 신뢰


새해 업무 첫날, 여의도에서 들리는 상승의 기운이 반갑다. 증시 개장과 동시에 코스피 지수가 2000포인트선을 가볍게 넘었다. 일단 출발이 좋다. 상서로운 분위기가 경제전반에 퍼졌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주가지수를 임기 중에 3000포인트대로 끌어올리겠다던 박근혜 당선인의 유세기간 중 호언이 머릿속을 맴돈다.

정말로 주가가 크게 상승하고 경제가 펴질 수 있을까. 새로운 정권의 출범으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난제가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거진 미국과 유로존의 재정난, 각국의 보호무역 강화 움직임에 우리 경제의 발이 무겁다. 당장 환율이 원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출로 먹고사는 처지에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경제가 어렵다면 가계와 기업, 정부 등의 경제주체들이 뜻과 힘을 모아 한정된 역량을 가장 효율적인 부문에 투입해야 하지만 이마저 기대난이다. 선거를 통해 확인된 대로 계층 간, 지역 간, 연령 간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는 탓이다. 나눠졌던 국론이 선거 뒤에는 자연스럽게 하나로 뭉쳐지는 다른 나라와 달리 정파 간 대립구도 역시 나아진 게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과도한 기대에 있다. 유신과 3공 정권 밑에서 가장 핍박 받은 세대인 50대의 투표율이 가장 높았다는 사실은 경제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높다는 점을 말해준다. 특히 비판적 성향이 강하다던 수도권 50대가 젊은 날의 민주화 열망을 접고 고도성장에 대한 추억을 되새겼다는 점은 자칫 박 당선인에게는 날카로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우수한 경제성적표를 내지 못하는 경우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보수 진영 전체의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고 체육관 선거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관건은 박 당선인이 고 박정희 대통령처럼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느냐인데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18년 대 5년이라는 재임기간, 99.9% 대 51.6%라는 득표율이라는 부녀 간의 차이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장기간에 걸쳐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극도의 효율성을 강력하게 추구할 수 있었던 부친과 달리 박 당선인이 쓸 수 있는 카드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투입될 예산과 그 파장은 산정하기도 어렵다. 언론 환경도 부친의 통치기간과는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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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를 경제에만 국한하면 전망이 더 불투명하다. 재임기간 중 9.1%라는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했던 박 대통령 시절에 두 자릿수였던 잠재성장률이 이제는 2%대마저 위협받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실질성장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고도성장 신화를 잊지 못한다. '다시 한 번 잘살아보세'라는 구호가 선거에서는 먹혔지만 가능할까. 예전 같은 성장은 불가능하다. 상위권 학생일수록 등수 올리기가 어려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버지와 비교할 때 정치 분야(득표율)에서는 두 배 차이지만 경제 분야(성장률)에서는 3~4배 차이라는 점은 불길한 지표다. 같은 1%라고 해도 성장률 1%는 득표율을 10% 이상 벌릴 수도 있을 만큼 파괴력이 크기에 그렇다. 결국 웬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경제 성적에 대한 실망과 지지기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출범하기도 전부터 숱한 장애물에 둘러싸였다면 극복 방법은 자명하다. 봉착한 장애물과 그 대응책을 솔직하게 알리고 서로 살기 위해 협조하자는 광범위한 동의를 구하는 데 길이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나 참모진이 공약의 실천보다는 불가능한 공약을 추려내는 작업을 선행한다면 오히려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새로운 권력을 축하하고 협조하는 '밀월기간'은 실종된 지 오래고 이해당사자들이 자기목소리만 높여가고 있는 형국이다. 어려운 가운데 새롭게 등장할 권력이 합리적인 실천의지를 보이며 사회적 합의와 화합을 이끌어갈 때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경제에도 희망이 솟아나리라. 혹한의 추위 속에서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솟아나는 새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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