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09년 발행 예정인 5만ㆍ10만원권 고액권 지폐의 초상인물 후보로 김구와 유관순ㆍ장보고ㆍ정약용 등 10명이 선정됐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여론검증에 들어가자마자 네티즌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최종 후보 선정까지 적잖은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고액권 인물 선정이 우리 사회의 가치관 대립으로 귀결돼 국민 분열의 양상을 띨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李)씨 성의 조선 남자 벗어나=한은은 각계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된 화폐도안자문위원회가 1차로 초상인물 후보 20명을 추천한 뒤 지난 6월 하순부터 7월 초순까지 일반국민 여론조사와 전문가 의견조사를 거쳐 후보군을 10명으로 압축했다고 7일 밝혔다.
10명의 후보는 김구ㆍ김정희ㆍ신사임당ㆍ안창호ㆍ유관순ㆍ장보고ㆍ장영실ㆍ정약용ㆍ주시경ㆍ한용운(가나다순) 등이다. 공교롭게 현행 은행권의 초상인물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이씨 성을 가진 조선시대 남자’는 모두 빠졌다.
현행 은행권의 초상인물은 1만원은 세종대왕, 5,000원권은 율곡 이이, 1,000원권은 퇴계 이황, 500원권 지폐(500원짜리 동전은 학)와 100원짜리 동전에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이 사용되고 있다. 60년 새 1,000원권에 세종대왕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인물이 들어간 모든 화폐를 장식했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이씨다.
◇이르면 9월 말 내정=한은은 이날부터 15일까지 자체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을 통해 일반인들이 10명의 후보에 대해 초상인물로서 적절성과 역사적 공과는 물론 다른 인물에 대한 추천 의견도 낼 수 있도록 했다. 접수된 의견은 화폐도안자문위원회에서 검토해 최종 인물선정 과정에 반영된다.
한은은 늦어도 9월 말이나 10월 초 고액권의 초상인물과 보조소재를 내정할 방침이다. 이어 연말까지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내년부터 지폐 인쇄작업에 돌입, 2009년 상반기 중 정식 발행할 예정이다. 한은이 이 같은 의견수렴을 거치기로 한 것은 그만큼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면서 후폭풍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고액권의 인물초상은 상징성이 큰데다 국민들의 이념적 성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선호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초상인물 확정 때 자칫 여론분열의 양상을 띠는 사태를 막기 위해 인터넷을 통한 사전 검증이라는 방법을 동원한 셈이다.
◇흠집 적은 인물 선정 될 수도=이날 낮12시부터 가동된 한은 홈페이지의 ‘고액권 도안 초상인물 후보에 대한 의견 게시판’에는 1시간에 100건 이상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한은이 선정한 후보 가운데는 김구와 신사임당ㆍ장영실ㆍ한용운 등에 찬성 의견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이 빠진 데 대한 비난성 글이나 단군, 안중근, 조선시대 여성 거상이었던 김만덕 등을 추천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와 한은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한은 측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TV 드라마 영향으로 연개소문, 동명성왕(고주몽)을 추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며 “하지만 조선시대 이전 인물은 표준 초상을 찾기가 쉽지 않거나 외교적 마찰을 초래하는 등 여러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적 관심이 달아오르면서 한은 내부에서는 “콜금리 결정보다 어렵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한은 안팎에서 국민들이 가장 지지하는 인물이 아니라 가장 흠집이 적은 인물이 선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