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67> '유치원 위험사회'

유치원에서 연이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사진출처=morguefile.com

“마치 지금은 전국의 세기와 같다” 기원전 중국에서 존재했던 전국 시대가 15세기 일본에 재현된 것을 보고 어느 귀족이 자기 일기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지금이 딱 그런 시대인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강상(綱常)의 도리가 파괴된 현실입니다, 양부된 사람이 자신의 부인에게서 난 딸을 유린하고, 선생님이 어린 아이를 주먹으로 폭행하는 세상입니다. 어쩌면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대로 1999년에 종말이 왔으면 좋았을 법한 현실이 우리 일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면수심의 양부가 칼과 목장갑을 들고 방문을 연 순간, 아이들은 얼마나 무섭고 슬펐을까요. 죽어갔던 아이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작고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 사회’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습니다. 조심하지 않는다고 위험한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일상을 살더라도 충분히 위험해 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겁니다.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지대에 놓여 있는 계층이 바로 아이들입니다. 부모가 얼마나 여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와 관계 없이,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피력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같은 대상에 대한 가치판단이 아직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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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연초가 되면 학부모들이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의 입학을 위해 추운 겨울 운동장에서 밤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강한 법규와 공무원의 직업윤리라는 도덕적 기준 안에서 아이들의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세상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선생님을 안전성과 신뢰성으로 검증해야 하는 세상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는 유치원 교사들의 처우가 매우 열악한 것도 사실입니다. 유치원 교사 한 사람 당 평균 월급이 144만원인데, 일반적인 근무 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9시~10시까지라고 합니다. 많은 부부들이 맞벌이 상태를 유지하기에 유치원이 저녁 늦게까지 아이들을 맡아주는 서비스를 가동하게 된 것입니다. 근무시간이 늘어날수록, 제공되는 노동의 가치와 대가도 늘어나야 하지만,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하에 유치원 사업자들이 교사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현실도 고민해야 합니다. 결국 모든 행동은 그 사람의 동기, 인센티브(Incentive)에서 출발합니다. 스스로 성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열정’으로 임하라는 주문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몇몇 유치원 교사들의 학대 논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의 비도덕성뿐만 아니라 그런 형태의 행동이 생겨나는데 영향을 미친 경제, 사회적 저변입니다. 인적 검증에 대한 인프라도 필요합니다. CCTV를 설치한다거나, 모바일 앱으로 수시로 선생님의 동향을 학부모에게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보다, 믿을 수 있고, 능력 있는 선생님을 뽑을 수 있는 제도가 절실합니다. 정부가 주도해야 할 것은 어떤 기술을 통해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을 단속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규제와 지원책으로 이해관계자들을 종합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그들의 법적 기본권과 인권의 취약 지대에 대한 전문적 분석도 함께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가 양심껏 기르겠거니, 선생님들이 희생정신으로 가르치겠거니 하는 낭만적인 환상만 가지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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