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몇 년간을 일본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특히 동경을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 몇 가지가 있었다.
사통팔달의 편리한 지하철, 명품들로 채워진 호사스러운 백화점, 모든 분야에 걸쳐 없는 책이 없다할 정도의 서적을 구비하고 있는 대형서점, 거리에 흘러 넘치는 마이카와 통금이 없는 휘황한 밤거리 등등.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서울의 모습에 똑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비교해보면 80년대 초의 동경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다해서 서울과 동경의 이미지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얘기가 빗나가지만 이 두 도시의 이미지가 같을 수 없는 이유는 전문가가 아닌 필자의 수박 겉핥기식 관찰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서울이 북한산 남산 관악산 등 아름다운 산과 시내를 관통하는 한강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미지야 그렇다 하고 어찌 되었든 일본이 1985년의 이른바 플라자(Plaza)합의로 그때까지 1달러=360엔이던 환율을 한꺼번에 1달러=120엔으로 조정하고도 끄떡없을 정도로 잘 나가는 것을 보고 당시 한ㆍ일 두 나라 사정에 모두 밝은 어느 인사가 한국과 일본의 산업경쟁력의 시차(時差)를 20년 정도로 꼽던 일이 생각난다. 한국이 그 정도 뒤졌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그 일본이 90년대 들어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우선 겉모습부터 과거에 우리를 주눅들게 했던 것과 같은 선망의 대상이 없을뿐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활기를 찾을 수 없었다는 여행객들의 얘기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만든 '2002년 세계경쟁력 보고서'가 한국의 경쟁력 순위를 30위인 일본보다 앞선 27위에 올려놓았다는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환란에서 벗어났는지 조차 아직 환신할 수 없는 우리 처지에서 일본과 같은 경제대국의 저력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한때 20년이라던 우리와 일본의 거리가 지금은 어느 정도일지가 또 한번의 광복절을 맞으면서 궁금해진다.
신성순(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