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에너지 신 냉전시대] 1부. 격화하는 패권다툼 <1> '셰일혁명 성공' 미국

정유공장 풀가동 新골드러시 방불… '사우디아메리카' 꿈꾼다

고용창출·제조업 부활 이어 세계경제지도 바꿔

중동서 한발 뺀채 亞 중심 외교·안보 전략 가속

차르 꿈꾸는 푸틴에는 '에너지 무기화'로 맞서


이달 초 찾아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서쪽의 베드타운인 위성도시 케이티는 셰일 혁명으로 달아오른 '신골드러시'의 축소판이었다. 수영장이나 조그만 호수를 갖춘 고급 주택가들이 끝없이 건설 중이었고 인구 유입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가건물로 지어진 학교마저 눈에 띄었다. 도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주택 단지에는 옆집에서 공사판이 벌어지는데도 이미 입주자가 있을 정도였다. 세계 에너지 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휴스턴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에너지 회랑(energy corridor)'으로 불리는 휴스턴 도심 서쪽 10번 도로 양옆에는 빽빽이 들어찬 고층 건물 바로 옆에서 건설 크레인 장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휴스턴은 3,700여개의 에너지 관련 기업들이 입주해 있고 미 25대 에너지 기업 가운데 20개가 본사나 주요 사무실을 두고 있다.

특히 휴스턴 동남쪽의 멕시코만 주변에 거대한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석유화학 공장과 파이프라인, 원유 운반선 등은 셰일 혁명의 현주소를 실감 나게 보여줬다. 지난 2012년 휴스턴 주변 항구의 수출량은 석유화학 제품 수출 증가에 힘입어 1,045억달러를 기록하며 뉴욕을 제치고 미국 내 1위를 차지했다. 셰일 혁명은 미국의 경제 지도까지 바꾸고 있다. 동부·서부 등 해안가 대도시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반면 셰일 지역이 몰려 있는 중서부 지역은 지난 5년간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지난해 노스다코다주와 와이오밍주가 각각 9.6%, 7.6%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콜로라도·아이다호·몬태나·텍사스·오클라호마·유타·사우스다코타·네브래스카 등도 모두 3%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미 경제 성장률은 1.8%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전체 대비 동부 해안주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2010년 38%에서 지난해 36%로 줄어든 반면 중서부 내륙 지역은 14%로 1%포인트 상승했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미 전체의 일자리 수는 3% 감소한 반면 석유 및 가스 산업의 직접 고용 수는 40%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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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앤더슨 웨스턴뱅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서부 지역에 19세기 중반 골드러시를 방불케 하는 신흥도시 붐이 일고 있다"며 "셰일 붐은 앞으로 미 경제성장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이자 1970년대 이래 고질적인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구조도 변화시킬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셰일 혁명은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이끌고 세계 경제 지도마저 바꾸고 있다.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이 유럽의 절반, 아시아의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미 제조업의 원가 경쟁력이 대폭 개선됐기 때문이다. 미 셰일 혁명은 그동안 첨단 설비를 내세워 시장을 주도하던 한국 등 아시아 정유업체에도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미 정유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중남미는 물론 아시아 시장 수출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로 나갔던 미 기업들도 싼 에너지를 찾아 생산기지를 속속 U턴하고 있다. 이 같은 '리쇼어링(reshoring)'은 석유화학 업체는 물론 모토로라·애플·월풀·캐터필러 등 다른 제조업체로도 확산되면서 2008~2013년 100여개에 달했다.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사우디아메리카'도 눈앞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올 1·4분기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1,100만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 세계에너지기구(IEA)가 전망한 2016년보다 2년이나 앞당겨진 셈이다.

미국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슈퍼 파워로 등장하는 것도 시간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이 천연가스 수출을 본격화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기존 수출국의 입지가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다. 휴스턴에 위치한 에너지 컨설팅 및 투자 기업인 파크먼왈링LLC의 제임스 파크먼 회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에너지 수입 감소로 OPEC 등이 남은 물량을 아시아 등 신흥국에 팔면서 이 지역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며 "민간 주도의 미 셰일 혁명으로 앞으로 특정 국가가 에너지 시장을 좌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라크 내전 사태에도 국제 원유 가격이 안정된 것도 미국 셰일 혁명의 힘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셰일 혁명은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패러다임도 바꾸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 독립에 힘입어 화약고인 중동에서 한 발 뺀 채 아시아 중심축(Pivot to Asia)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 이란이 서방과 핵 협상에 나선 것도 미 셰일 혁명으로 국제 원유시장 영향력이 쇠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셰일 혁명을 '21세기판 차르(황제)'를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야망을 분쇄할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천연가스 공급을 무기로 유럽을 위협하고 있는 푸틴에 맞서 역으로 에너지 무기화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이다. 3월 전략비축유(SPR) 방출, 캐머런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프로젝트 승인, 초경질유의 일종인 콘덴세이트 수출 허용 등이 단적인 사례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셰일 혁명은 미국 내부적으로 경제촉진과 일자리 창출, 무역적자 감소, 새로운 세수 발굴, 기업가 정신과 자본시장 강화 등 다양한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며 "대외적으로는 유럽과 러시아·중동·베네수엘라 등에 대한 외교전략, 테러리즘 대처 등 전방위에 걸쳐 지정학적 전환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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