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현대문단을 대표하던 이형기 시인이 남긴 ‘낙화’의 몇 소절이다. 시인은 한 떨기 꽃잎을 보며 이별의 정리를 노래한다. 머지않아 맺을 열매를 향해 자신을 버리는 꽃잎! 청춘을 꽃답게 죽음으로써 장차 잉태할 축복을 약속하는 꽃잎을 보며 시인은 묻고 있다. 너는 어찌 살 것이냐. 살다 보면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숱한 갈등의 길모퉁이에 서서 우리는 질문을 던진다. 이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저 길로 갈 것인가. 선택의 결과는 또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번뇌의 연속이 바로 삶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네 보통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남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버둥거린다. 그런 삶을 사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버릴 때 새로운 축복을 잉태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 시인의 지혜가 참으로 반갑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어떤 제품을 개발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부터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자금은 어디서 끌어들이고 사람은 또 어떻게 구할 것인가 등. 심지어 기업 자체를 버려야 하는 지경의 순간까지 끊임없는 선택을 강요당한다. 경영자의 선택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향이 짙다. 때문에 많은 경영자들이 의사결정의 위험성을 분산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책임경영제를 도입해 의사결정 구조를 분산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업의 주인임을 자임하는 경영자도 많다. 이들 가운데는 자신이 모르는 분야의 의사결정까지 주도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또한 기업 규모가 이미 자신의 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성장했는데도 여전히 의사결정권자의 지위를 만끽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선택은 대체로 축복받지 못했다. 기업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탓이다. 오늘도 필자는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하나 둘 선택을 하기 전에 ‘낙화’를 상기하고자 한다.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 의사결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버리는 것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장차 축복의 열매를 맺기 위한 장대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지혜가 새삼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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