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리뷰] 새 영화 <카트>, ‘그들’이 아닌 ‘우리가 되길 바라다

'그들'이 아닌 '우리'가 되길 바라다

갑자기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 실존적으로 담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줌마,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이혼녀, 50번 넘게 면접에 떨어진 20대 취업 준비생, 은퇴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노년의 청소부, 아르바이트 고등학생...

영화 <카트>는 작정이나 한 듯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을 영화 속으로 불러 모았다. 얼핏 각자의 위치에서 전혀 다른 삶의 슬픔을 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에서 이들은 서로 같은 아픔과 불안을 공유한다. 아니 각자의 사정은 있지만, 회사는 그런 사정에 관심이 없다. 정규직을 꿈꾸며 수당도 없는 야근을 매일 같이 하는 선희(염정아 분)든, 홀로 키우는 아들을 위해 매일 칼퇴근을 하는 혜미(문정희 분)든, 회사가 볼 때는 모두 똑같은 비정규직일 뿐이다. 회사의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앞에서, 그래도 5년간 벌점 한번 없었던 선희는 구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그저 기대에 그칠 뿐이다.


영화는 낯익은 배우들의 얼굴만 아니라면 다큐멘터리로 착각할 정도로 현실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일까. 통상의 상업영화처럼 '우리 편'과 '나쁜 편'을 갈라 결국 '우리'가 승리하는 통쾌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니 나쁜 편으로 규정할 만한 구체적인 '적' 자체가 제대로 등장하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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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대신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투쟁을 최전선에서 저지하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이다.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던 옥순의 분노는 '돈 벌어오라'는 남편의 요구에 삼켜져야 했고, 아르바이트비를 제대로 달라는 태영(도경수 분)의 뺨을 후려치는 이 또한 거대한 자본가라기보다는 영세한 편의점 점주다. 파업하러 나오면서도 '죄송하다'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는 계산원들을 향해 '서비스하는 사람들이 왜 고객에게 피해를 주나'고 불평하는 사람이나 '잘리는 인간들은 다 이유가 있다'고 쏘아붙이는 정규직 최 과장이 나와는 전혀 다른 악독한 인물이라 말할 용기가 내게는 있을까.

우리 사회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맞먹는 1,0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한 집 건너 비정규직 가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이유로, 나는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웃집 비정규직에 대해 무지하거나 그들의 고통에 무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악의 평범성'이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에 온전히 스며든 것은 아닌가.

그러나 영화는 희망 역시 그들에 연대(連帶)하는 우리에게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마트로 복직한 직원들과 마트 밖에서 싸우고 있던 직원들이 함께 마트 소비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카트를 밀며 공권력에 부딪치는 영화의 끝 장면은 그런 측면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무거운 주제지만 작정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았던 것이 영화의 미덕이다. 예쁘고 잘 생긴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보는 맛도 있다. 그 무엇보다 영화 <카트>는 비정규직 문제를 실존적으로 진지하게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영화다. 팍팍한 삶 속에서 모두가 다른 이를 위해 헌신하고 사회 문제에 뛰어들기를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말 좀 들어달라'는 영화 속 외침처럼 부디 극장에서만이라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를. 11월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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