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와타나베 부인', 미국의 '스미스 부인', 유럽의 '소피아 부인'같이 두둑한 돈을 외환에 투자하는 한국의 '김 여사'가 최근 달러예금에 뭉칫돈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달 외화예금 잔액이 10년 만에 최대치로 폭증했다.
8일 한국은행의 '4월 말 거주자 외화예금 현황'을 보면 개인의 외화예금 잔액은 65억달러로 전월보다 4억7,000만달러 불어났다. 잔액은 지난 2004년 9월(70억3,000만달러) 이후 10년7개월 만에 가장 많다. 월간 증가폭도 지난해 4월(6억5,000만달러) 이후 1년 만에 가장 컸다. 외화예금에는 미국달러화·위안화·유로화 등이 포함되지만 대부분이 달러화로 이뤄져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달 원·달러 환율이 1,000원대 중반까지 떨어진(달러 약세) 점이다. 3월 달러당 1,130원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미국의 금리 인상 기대 시점이 6월에서 9월 이후로 미뤄지며 지난달 28일 1,068원60전까지 무려 60원 넘게 급전직하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산가들은 연말 미국 금리 인상이 가까워지면 환율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지난해 7월 환율이 1,000원선을 위협했을 때 달러를 사들였다가 반등하자 재미를 본 자산가들이 다시 한 번 환테크로 귀환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 7월 1,008원50전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12월 1,100원까지 무려 100원이나 상승한 바 있다. 환율이 1,000원일 때 달러를 사들인 사람이 1,100원일 때 팔면 10%의 수익을 얻는다.
다만 이 같은 김 여사의 투자행태는 위험하다는 지적이 많다. 아무리 미국 금리 인상으로 환율이 오를 수 있다지만 독일에 버금가는 막대한 경상흑자로 구조적 환율 하락 압력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미국 금리 인상 시점이 뒤로 미뤄지거나 속도가 느리다면 오히려 환율이 하락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환테크에 실패한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지난해 2월 환율이 1,080원일 때 5,000만원을 통째로 달러예금에 집어넣었다. 당시는 미국 금리 인상이 가까워지면 적어도 1,200원까지는 갈 수 있다고 봤다"며 "그러나 금리 인상이 늦춰지고 막대한 경상흑자만 부각돼 환율이 세자릿수까지 갈 수 있다는 뉴스가 나오자 초조해져 500만원의 손실을 감수하고도 투자를 정리했다. 이제는 환테크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며 허탈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