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스포츠, 영화 그리고 발레


며칠 전 모스크바 그랑프리에 참가한 리듬체조 손연재 선수가 곤봉에서 동메달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그런데 나한테는 동메달 수상 소식보다 손연재가 리본 종목에서 발레 '백조의 호수' 음악으로 출전했다는 소식이 훨씬 더 반갑게 느껴졌다.

김연아ㆍ포트먼 만나 대중화한 발레


손연재의 경기 동영상을 찾아봤다. 백조의 호수 1막 왈츠로 시작해 흑조 2인무(파드되) 음악으로 끝나는데 중반에 그녀가 연속 회전을 도는 동작은 발레 백조의 호수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흑조 오딜'의 32회전 푸에테(fouette)가 연상돼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일본의 피겨선수 아사다 마오도 지난해 재팬 오픈에서 백조의 호수를 갖고 출전했다. 손연재의 연기가 흑조 오딜에 가깝다면 아사다는 백조 오데트의 분위기에 더 주안점을 뒀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 대중에게 발레와 스포츠가 가깝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 김연아 선수가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시 발레 '지젤'에서 모티브를 딴 쇼트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부터다. 김연아를 통해 피겨 스케이팅에 관심을 갖게 된 대중은 그가 선택했다는 이유로 발레 지젤에도 관심을 가졌다.


리듬체조가 일반 체조와 다르고 피겨 스케이팅이 스피드 스케이팅과 구별되는 부분 중 하나는 기본 훈련 프로그램에 '발레'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같은 스포츠지만 리듬체조와 피겨 스케이팅은 심장으로 음악을 느끼고 손끝에서 발끝까지 음악을 타며 아름다운 라인을 만든다는 점이 일반 체조나 스피드 스케이팅과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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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우리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발레 영화 한 편을 만났다. 내털리 포트먼이 주연한 '블랙 스완'이다. 블랙 스완은 발레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흑조 오딜의 악마적인 이미지를 상징한다. 영화에서 하루아침에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포트먼이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자해를 하고 환각 상태에 빠지는 모습은 발레에 종사하는 우리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무용수에게 약간의 무대 공포증 또는 실수 없이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섬뜩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탄광촌 광부의 아들에서 영국 로열 발레단의 스타 무용수로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 '빌리 엘리어트'는 오히려 '있을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런데 가장 반가운 점은 김연아의 지젤과 포트먼의 블랙 스완이 있던 2011년부터 국내에서 발레에 눈을 뜬 초보 관객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다 개그 프로그램 '발레리노'까지 히트를 치면서 너무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벽으로 느껴졌던 발레는 김연아에게 세계선수권 쇼트 1위의 영예를 안겨준 장르, 개그맨의 몸을 빌려 기꺼이 망가져준 친근한 예술로 대중에게 다가왔다.

그 본연의 모습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스포츠가 발레와 만나 예술적으로 성장했다면 발레는 스포츠와 만나 대중적으로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양대 발레단으로 손꼽히는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이 평균 유료 객석 점유율 80%를 넘기며 공연마다 많은 관객과 만나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대중이 스포츠에서 발견한 발레의 매력, 영화를 통해 생긴 발레에 대한 호기심, 개그 프로그램으로 알게 된 발레의 친근함…. 다른 장르를 통해 발레를 처음 접한 관객은 어쩌면 발레 그 본연의 모습을 궁금해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이달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백조의 호수에 임하는 우리 발레단의 각오도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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