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

낮엔 현장에서 밤엔 책으로… 주택 한우물파며 회사 키워

이제 1등기업 만들어야죠



한해 매출이 1조원을 넘는 계열사 집단을 거느린 건설사 회장님의 점심은 어떨까. 비싸고 고급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창선(사진) 중흥건설 회장이 점심을 하자며 데려간 곳은 회사 건물과 걸어서 5분 남짓 되는 흔한 동네 '밥집'이었다. 점심시간이라 시끌벅적한 식당 안에서 정 회장은 이리저리 둘러보다 냉큼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회장님 오늘은 뭘로 드실 거예요?" "생선구이로 하지 뭐."


식당 아주머니가 능숙하게 정 회장의 주문을 받았다. 10분쯤 있으니 밥과 반찬·생선구이가 나왔다. 정 회장은 젓가락을 들더니 생선을 먹기 좋게 찢기 시작했다. "들어봐요. 보긴 이래도 맛있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정 회장도 수저를 들더니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서둘러 다시 회사로 향했다. 올해로 일흔이 넘었지만 젊은 사람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걸음은 빨랐다. 기자가 옆에 나란히 서서 걸으며 "걸음이 무척 빠르다"고 하자 멋쩍게 웃고는 뭐가 빠르냐며 "어서 사무실 들어가서 차라도 한잔 하자"고 답했다.

"집 짓다가 문제 있으면 바로 고쳐야 기업도 피해 줄여 … 그게 장인정신"

정 회장의 첫인상은 TV드라마에서 주로 묘사되는 접근하기 힘든 기업 회장이라기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아버지다. 집무실에 걸려 있는 20여년 전의 사진에서 엿보이는 강인한 인상은 시간의 흐름에 소탈하고 검약한 동네 어르신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중흥건설의 모태는 32년 전에 설립된 금남주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회장은 지인과 뜻을 모아 회사를 설립하고 직접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가며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지인의 소개로 건축일을 시작한 정 회장은 시간이 가면서 건축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설계도에 연필로 복잡하게 그려진 그림이 아름다운 건축물로 태어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가슴 벅찬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몸으로 부딪히면 끝날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움의 필요성을 느꼈다. 낮에는 현장에서 선배들에게 배우고 밤에는 건축 관련 서적을 구해 읽으면서 주택건설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채워나갔다. 실무경험과 함께 이론이 쌓이면서 정 회장의 사업도 조금씩 규모가 커졌다.

현장의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것은 건설 경영인으로서 정 회장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지금도 현장에 나가면 직접 공사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알려준다.

"아파트단지에 잔디를 심을 때 그냥 깔면 안 돼요. 잔디를 심기 전에 먼저 땅에 물이 흐를 수 있는 길을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평평한 땅에다 먼저 잔디를 심어놓고 나중에 물길을 내려고 하는데 이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일을 두 번 해야 하니 시간과 돈도 두 배로 듭니다."

중흥건설의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전문가들이 실무에 배치돼 중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직원들이 정 회장을 '건축박사'라고 부르며 인정하는 것은 이론과 함께 이런 풍부한 실무경험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탈한 모습의 그이지만 주택건설에 관해서는 가치관이 확고했다. 사업 초기 한 연립주택 공사에서 시공이 다소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자 30% 이상 공정이 진행됐던 집을 아예 부수고 새로 지었다는 일화는 집에 대한 그의 철학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때문인지 정 회장은 최근 잇달아 일어나는 건설현장의 부실공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집을 짓는데 한번 문제가 발생하면 고객들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고쳐야 기업의 피해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장인정신이죠."

주택건설 회사는 주택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 … 디벨로퍼 역량도 강화

중흥건설은 어려운 건설업황에도 최근 가장 성장세가 가파른 업체 중 하나다. 이는 정 회장만의 기업경영 철학에서 비롯됐다. 최장 3년 뒤의 현금흐름까지 파악하며 기업을 경영하는 정 회장의 자금관리는 중흥건설의 기업신용도를 중견 건설사로는 드물게 'AAA'까지 끌어올렸다. 철저한 사업성 검토와 분양시기 결정의 노하우, 안정지향적인 기업경영은 한해 1만가구에 가까운 아파트를 지으면서 대부분 성공적인 분양으로 이어진 원동력이 됐다.

"주택공급 규모가 크다고 공격적인 것은 아닙니다. 공급량이 많을 뿐이지 각각의 사업을 살펴보면 나름의 공급시기 판단과 면밀한 사업검토, 적절한 분양 타이밍이 있습니다. 또한 틈새를 공략하는 사업지도 있습니다. 결코 공격적인 측면으로만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안정을 강조한다고 기업이 움츠리고만 있다면 그것 역시 기업의 본질을 잊은 것과 마찬가지예요."

주택경기가 어려워지자 토목·플랜트 등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중견 건설사들에 대해서도 정 회장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주택건설 전문기업인 만큼 주택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만들어야지 다른 곳에 손을 대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전남 순천 신대지구 사업은 중흥건설이 한발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중흥건설이 개발을 맡은 신대지구 사업은 애초에 땅이 팔리지 않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정 회장은 고민 끝에 직접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기로 하고 비용과 회사의 이익을 줄이는 대신 싼 분양가에 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신의 한수'였다. 아파트는 분양 때마다 대성공을 거뒀고 이를 눈여겨본 대기업들도 신대지구에 사업부지를 사기 시작했다.

"우리가 개발한 땅에 우리가 아파트를 짓지 않고 땅을 팔려고 했다는 게 사업 초기 어려움을 겪은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파트를 지어 성공을 거둔다면 땅을 사서 사업하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했던 거지요."

신대지구 사업을 계기로 중흥건설은 서산 예천2지구, 청주 방서지구, 당진 수청지구 등에서도 개발사업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디벨로퍼로서의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건설업계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특히 최근 대형 건설사가 공공택지를 분양받을 때 중견사들이 계열사를 동원해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청원을 한 것은 대기업의 무책임한 횡포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세종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대형 건설사들이 좋은 입지의 땅을 확보해놓고도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위약금까지 물고 세종시에서 철수한 적이 있다"며 "이제 와서 중견업체들의 입찰을 막아달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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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 못 배우는 학생 없어야… 장학사업이 개인적 꿈"

정 회장의 고향 사랑은 각별하다. 지역문화재단을 운영하고 프로축구단 광주FC도 지원하고 있다. 정 회장은 중흥건설이 이만큼 성장한 데는 지역민들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주변도 살펴보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지역사회에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의 우수 인재를 우선 채용하는 등 지역과 상생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어릴 때 공부하고 싶어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장학회를 키워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정 회장은 사업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바로 장학사업이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했다는 학생들이 지금 이 시대에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자수성가형 기업가답게 현재 젊은 세대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어느 분야에서건 크든 작든 전문가가 되려는 노력을 해보십시오. 인터넷을 통해 무한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전문서적도 도서관에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이런 좋은 환경을 이용해 한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한다면 삶이 결코 후회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정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마지막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중흥건설을 국내 제일의 주택건설 전문기업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며 "그게 사명이고 그렇게 이름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 회장은 '중흥건설이 1등이 되면 다시 한 번 만나자'는 약속을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정창선 회장은

△1942년 12월

△전남대 경영대학원 수료

△2005년 동탑산업훈장 수상

△광주 한마음장학재단 이사장

△광주 상공회의소 고문







●중흥건설은

광주·전남 향토기업서 'S-클래스' 브랜드로 2000년대 전국구 도약
올해도 분양불패 행진


중흥건설은 지난 1983년 금남주택건설로 시작해 1989년 지금의 중흥건설로 상호를 변경한 뒤 올해로 창사 32년째를 맞은 주택건설 전문 중견기업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광주·전남지역을 기반으로 주택사업을 하던 향토기업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으로 사업 대상지를 확대하면서 전국구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0년 시공능력 평가순위는 104위였지만 어려운 건설업황 속에서 지난해 63위까지 올라서며 업계에서 주목받는 건설사로 자리매김했다. 중흥건설의 지난해 매출액은 3,600억원 정도지만 20여개 계열사를 포함한 그룹 전체 매출액은 1조5,000억원이 넘는다.

중흥건설의 아파트 브랜드는 'S-클래스'다. 여기서 'S'는 특별함(special)과 뛰어남(superior), 최고(superb)의 의미다. 중흥건설은 S-클래스 브랜드를 달고 아파트 분양에 나서 쟁쟁한 대기업 계열 건설업체들을 제치고 2012년과 2013년 국내에서 세번째로 많은 주택을 공급하기도 했다. 올해도 7,000여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단순히 공급량만 많은 것이 아니다. 분양성적도 뛰어나다. 2012년부터 세종시에 아파트를 분양하기 시작한 중흥건설은 지금까지 100% 분양에 성공해왔다.

중흥건설은 건설업체들이 잇달아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로 무너지는 상황에도 기업신용평가 'AAA'를 받고 있다. 철저한 재무관리와 '안정 속의 성장'이라는 기업철학에 따라 내실경영에 집중한 덕분이다.

이제 중흥건설은 단순한 주택건설 업체가 아니라 직접 땅을 사서 개발하는 '디벨로퍼' 분야로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전남 순천 신대지구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앞으로 순천 신월지구 등 개발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적으로 담당했던 공공택지 개발 분야에서도 그동안 자체 개발사업의 경험을 담아 대행 개발사업에 적극적이다.

올해도 중흥건설은 분양불패를 이어가고 있다. 전남혁신도시를 비롯해 5월까지 분양한 4개 사업지에서 모두 순위 내 청약을 마감했다. 다음달에는 경남 창원 자은3지구에서 중흥 S-클래스 767가구 분양을 앞두고 있다. 하반기에도 중흥건설은 아파트 공급을 이어갈 계획이다. 제주강정지구(510가구), 나주혁신도시(993가구), 순천 신대지구 임대아파트(1,490가구)를 곧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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