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없는 나라는 국민들 사이에 눈물과 한숨만이 가득찰 수 밖에 없다. 나라가 기업활동으로 가득 들어차야 눈물이 들어찰 여지도 적어진다. 기업이 없는 후진국은 나라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감옥처럼 정체될 수 밖에 없다.』송병락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자신의 책 「기업을 위한 변명」(김영사 펴냄)에서 이렇게 말한다. 송 교수에 따르면 기업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들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가. 그리고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송교수는 한국기업들의 생존모델을 이 책에서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한국의 주요 산업이 반도체, 전자, 철강, 자동차등으로 일본과 같으므로 기업은 일본식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세계 최강국은 미국이므로 무조건 미국식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송 교수의 진단은 다르다. 한국의 기업구조는 일본이나 미국과 엄연이 다르다는 것. 우리의 현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외국의 잣대로 한국의 기업구조를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한국적 특징을 잘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기업 밑에 기업 없고, 기업 위에 기업 없는 나라」이다. 개인주의 국가답게 미국의 기업은 GM자동차든 그 부품회사이든 일대 일의 대등한 관계이며 계약파기에 의해 언제든지 갈라설 수 있다.
반면에 일본은 「기업 밑에 기업 있고, 기업 위에 기업 있는 나라」라는 것. 하나의 기업은 1차,2차,3차 자회사를 피라미드식으로 거느리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기업 그룹 안에 기업도 산업도 있는 구조이다. 가령 삼성 그룹안에 자동차, 전자, 화학, 건설등의 산업이 있고, 전자 산업 안에 다시 삼성전자, 삼성전관, 삼성전기등의 회사가 있다. 우리는 우리식대로의 기업·산업구조가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대기업이 판을 치고 있기때문에 중소기업이 자라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재벌해체등 과격한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알리스 포겔 시카고대 교수같은 사람은 『한국의 기업그룹은 공업화를 늦게 시작한 한국이 선진공업국을 따라잡기 위해 불가피하게 채택한 후발공업화 패러다임이다』고 말한다.
송 교수 역시 한국을 대기업 경제로 만드느냐 중소기업형 구조로 만드느냐를 놓고 논쟁하는 것만큼 순진한 일도 없다고 강조한다. 한국인 4,500만명이 먹고 살려면 큰 기업부터 작은 기업까지 골고루 갖춘 종합산업구조여야 하며, 이미 대기업으로 자란 것을 굳이 중소기업으로 줄이는 것도 세계경제전쟁시대를 역행하는 사고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한국적인 현실에 바탕을 두어 우리 기업의 존재양식에 대해 변명을 해주고 있다. 재벌에 대한 지나친 비판 못지않게 무조건적인 옹호 역시 문제는 있다. 그러나 재벌해체만이 한국경제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실현 불가능한 주장만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는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의 주장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이용웅 기자 YY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