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대수술 필요한 공적연금

박순일 한국사회정책연구원장


우리나라의 연금제도는 1880년대 이후 유럽에서 오랜 기간 발전된 제도를 짧은 기간 압축해 도입했다. 공무원·군인 및 사립학교교직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을 순수 소득비례연금제로 50년 전후 도입했으며 26년 된 국민연금제도에는 자의적인 급여산식이 적용됐다. 불과 한 달 전 시행된 국민행복연금제도에는 빈곤해소 미흡 및 형평성의 논란이 잠복돼 있다. 유럽 선진국에서도 초기에는 최저보장 중심의 기초연금제도 도입, 1960년 전후에는 생활수준 향상을 반영한 소득비례연금제도 도입, 그리고 1990년 전후부터는 재정안정화를 위한 공적연금제도 조정과 민간연금 강조 등으로 개혁돼왔다.

포퓰리즘은 재정부족· 비효율 불러

선진 유럽이나 한국에서의 공적연금 개혁은 현안 정책 수요에 대응한 결과이지만 근시안적이고 정치적으로 조정돼 갈등을 키워왔다. 가장 큰 문제인 공적연금제도는 포퓰리즘을 내세워 덜 내고 더 받는 시혜적 원칙과 중상위층 중심의 연금제도 채택에 따른 재정부족과 노인빈곤 제거 실패에 있다.


따라서 공적연금제도의 개혁은 기본적으로 수지균등의 원칙과 노후생활 안정이라는 사회보험의 목표에 맞춰야 한다. 첫째, 고령화와 경제성장률 둔화로 문제가 된 공적연금의 재정위기는 '낸 만큼 받는다'는 수리적 진리를 따를 때만 해결이 가능하다. 물론 사적연금과 같이 개개인에 대해 원칙을 지킬 필요는 없고 세대 내에서 평균적으로 원칙이 지켜지면 재정불안은 제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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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공적연금제도는 노후생활 안정을 실현할 체계로 개편돼야 한다. 가입기간에 따라 정액기초연금액이 증가하는 현재의 국민연금 급여산식에서 일정 기간 가입한 자는 동일한 정액을 받도록 해 노후빈곤에 대처한다. 그 이상의 기본생활 보장을 위해서는 소득수준별로 차등화된 수정소득비례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그리고 막 시작한 국민행복연금과 직역연금도 장기적으로는 수정소득비례급여 방식으로 통합해 노후 빈곤탈피와 기초생활 보장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셋째, 형평성을 증진시키는 개혁으로 사회통합에 기여해야 한다. 생활수준의 불평등은 주로 현세대에서 발생했으므로 세대 내에서 연금소득의 재분배는 정당성을 가진다. 따라서 재분배장치가 없고 기초노령연금에서 제외된 직역연금에는 급여산식에 재분배장치가 들어와야 한다.

직역연금제 등 근본적 개혁 나서야

직역연금제도의 급여산식이 국민연금과 동일할 필요는 없다. 각기의 특성에 맞게 급여 및 기여체계가 만들어지면 형평성과 효율성은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직역연금에는 직간접적으로 정부예산이 들어가므로 국민연금과 직역연금 가입자들 간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의 부담은 적정 수준이어야 한다. 예컨대 최저생활 보장이 사회적 책임이라고 가정하면 최저생활 보장범위에서만 정부예산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도의 개혁이 전체적 형평성을 증진시켜도 사회적 불만 집단이 발생할 수 있다. 현 수급자의 이익을 크게 줄일 수 없어 미약한 개혁을 하게 되면 미래 세대들은 현세대와의 차등 때문에 불만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도는 없으므로 근본적 개혁도 사회갈등을 감내할 수 있도록 충격은 점진적이고 장기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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