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검찰 수사 '끼워넣기ㆍ무차별 도청'에 초점

안기부와 국정원의 도청 전모를 밝히려는 검찰수사가 중반을 향해 속도를 내면서 김대중 정부 당시 국정원이 감청 장비를 불법 사용한 정황이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김영삼 정부 때 안기부가 `미림'이라는 도청팀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불법 행위를 저질러 왔다면, 국정원은 합법적 감청 절차를 교묘하게 활용하거나 통제장치 없이 새로운 감청 장비를 남용했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검찰은 국정원 불법 감청 실태 개요가 어느 정도 드러난 이상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부분은 사법처리를 염두에 두고 수사한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수사 행보가주목된다. ◇`끼워넣기식' 법 절차 허점 악용했나 =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까지 보고했다는 의혹을 받을 정도로 YS 정권 실세들과깊은 관계였던 `미림'은 DJ 정부가 집권하면서 해체됐다. 안기부 내에서도 국내 담당 차장과 부장 정도의 극소수 보고 라인만 존재를 알고 있었던 `미림'이 해체된 뒤, 음식점에 도청 장치를 설치해놓고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무모한 도청은 사라졌다. 그 대신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개편되면서 대대적인 조직 `물갈이'가 이뤄진 뒤에는 감청을 위한 허가서나 영장에 제3의 전화번호를 끼워넣는 식으로 도청했다는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천용택 전 국정원장이 "정상적인 직무를 행하다 보면 월권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과오는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 감청 중 일부도청은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국정원은 통상 매년 3차례 각 정보, 수사 기관에서 외국인, 대공 관련 정보 수집을 위해 제출한 감청 계획서를 종합해 대통령에게 감청 승인을 받고 있고, 내국인은 관할 고등법원 수석부장의 허가를 받는데 이 과정에서도 도청이 이뤄졌을 수 있다는 추론이 나오고 있다. 주로 외국인 감청을 위해 대통령 승인을 받을 때는 매번 40~50명의 대상자 리스트를 올리는 데, 이 과정에서 내국인도 자연스럽게 `불법 감청'됐을 가능성이 높고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끼워 넣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 승인 자료의 존재를 이미 확인했고, 승인을 받았다면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 다만 일부 관련 없는 사람들을 끼워넣어 불법 감청을 했을가능성이 높아 이 부분을 입증하기 위해 국정원 관계자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석부장판사 허가는 감청이 필요할 때마다 받기 때문에 `끼워넣기' 편법이 이뤄졌을 여지가 적다. 1999년 이후 1년여 동안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를 지냈던 법조계 인사들도 "재임 기간 1∼2건, 많게는 2∼3건의 감청영장을 발부했으며 감청 대상자는 국가보안법위반 우려가 있는 사범들에 한정됐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대통령 승인을 받은 뒤 합법 감청한 대상자들은 주로 마약, 밀수 범죄와 연루된 외국인이었지만, 불법 감청을 당한 일부 내국인들이 어떤 계층이었는지는검찰이 밝혀야 할 몫이 됐다. ◇`카스 통한 무차별 도청' = 국정원이 1999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휴대전화 감청을 목적으로 개발한 `카스'는 통제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악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승인을 받아 외국인, 대공 범죄에 합법적으로 쓰였을 수도 있지만 내국인을 대상으로 사용됐다면 `휴대전화 감청 허가 요청은 받아본 적이 없다'는 법원관계자들의 말을 감안할 때 카스를 통한 감청은 명백한 불법이다. 카스는 CDMA 2000이 도입을 계기로 2000년 9월 폐기됐다는 국정원 발표와 달리실제로는 몇 달 더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고, 폐기과정이 불명확한 점도 불법행위에사용됐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정황 때문에 2000년 11월 국정원 고위 관계자들이 연루됐던 이른바 `진승현게이트'를 수사할 당시 서울지검 청사 앞에 이동식 감청 차량이 모습을 보였다는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2000년 9월 이후에도 카스 사용이 가능했던 것은 CDAM 2000 기술이 일시에 상용화된 게 아니라 2000년 10월 이후 이동통신업체들이 차례로 도입했기 때문인 것으로분석된다. 이에 천용택 전 국정원장은 "정보기관 고유 업무인 통신정보를 얻기 위해 자체장비를 개발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도 휴대전화 감청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통제장치를 두지 않았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양파껍질 속 진실' 규명해야 하는 검찰 = 안기부ㆍ국정원 도청 수사는 검찰에 꺼풀을 벗기면 다른 꺼풀이 나오는 양파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벗기다 보면 나중에는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속살이 드러나겠지만, 국가 정보기관의 실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게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지는 검찰에 적지않은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정원이 합법을 가장해 `끼워넣기' 식으로 도청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이상 비록 `2급 비밀'로 자료 공개가 제한돼 있더라도 어느 계층을 대상으로 어떤 목적 때문에 도청했는지는 수사 결과물로 내놓아야 할 형편이다. 또 도청을 통해 확보한 자료들이 어느 선까지 보고가 이뤄졌고, 실제 어떻게 활용됐는지도 일부 공소시효가 남아있다면 향후 수사에서 사법처리까지 염두에 두고풀어야할 숙제다. 사건 실체를 밝히는 것 외에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휴대전화 도ㆍ감청가능성을 명백히 규명하는 것도 검찰의 몫으로 남았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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