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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현재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이 무려 13조원에 육박하고 있음에도 재정전망에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는 것은 급증하는 노인 의료비가 주된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건강보험재정의 가장 큰 부담 요인으로 노인 의료비를 꼽는다. 우리나라가 여느 국가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요양병원에 너무 많은 급여비를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국의 요양병원 수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68개소에 불과했던 요양병원 기관 수는 2012년 1,087개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10년 동안 연평균 40.1%씩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병원과 의원이 각각 5.6%, 4.9% 증가하는 데 그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요양병원의 급증은 과잉경쟁을 불러왔다. 요양병원의 환자 모시기 '전쟁'도 이 같은 배경에 기인한다.
요양병원에 대한 급여비 지불체계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어르신들의 불필요한 장기의료시설 이용을 줄이기 위해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65세 이상 어르신이나 노인성 질병을 가진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요양원 이용 비용의 80%를 국고로 지원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어르신들이 직접 공단에 찾아가 수급권을 신청하고 인정조사와 등급판정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와 달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요양병원의 경우 별다른 까다로운 절차 없이 의료비를 지원 받을 수 있다.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요양원보다 요양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한 것이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어르신들이 너무 의료기관에 오래 계시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인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르신들은 여전히 요양병원에 많이 있고 그렇다 보니 노인 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건보공단의 기관별 급여비 현황을 살펴보면 2009년 9,790억원이던 요양병원 급여비는 지난해 2조8,432억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9~2013년 연평균 증가율로 따지면 26.9%다. 이는 상급종합(10.1%), 종합병원(8.8%), 병원(12.2%), 치과(10.9%) 등 다른 기관의 연평균 급여비 증가율보다 높다.
작은 질병을 앓아도 수가가 비싼 3차 병원부터 찾는 관행도 건보재정을 갉아먹고 있다. 최근 일부 고혈압과 당뇨 등 경증질환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의 방문을 줄이고 동네의원을 찾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경증질환 환자들이 3차 병원을 선호한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등도 건보재정에 큰 부담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정부는 건강보험재정 현황을 발표하며 건보의 흑자재원을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및 3대 비급여에 대한 보험 적용, 생애주기별 필수의료 중기 보장성 강화에 사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를 비롯한 건보 적용 확대에 오는 2018년까지 모두 7조원의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건보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출구조를 합리화하는 한편 보장성 강화 정책의 재원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형평성을 담보로 고소득층의 건보료 인상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결국 건보료를 올리는 수밖에 없는데 국민들이 건보료 인상을 납득하려면 형평성이 보장돼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