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조업체의 부채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100% 아래로 떨어졌다.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도 높은 기업부문 개혁에 매달린 결과 기업의 부채가 꾸준히 낮아지면서 마침내 부채비율도 두 자릿수로 내려갔다.
전반적인 부채비율이 크게 낮아졌다고는 하나 부채구조는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총 차입금 가운데 단기차입금 비중이 53.6%로 IMF 당시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는 우량 대기업들은 지속적인 수익성 개선 등에 힘입어 부채를 크게 축소한 반면 중소기업들은 경영난으로 운영자금 차입을 늘려 단기차입금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기업 수익성에 있어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추세다. 제조업의 전반적인 수익성은 개선됐지만 10개사 가운데 4개사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대기업들이 계속 엄청난 규모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하지만 대다수 중소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내도 은행이자를 갚지 못할 정도로 한계상황에서 헤매고 있다.
23일 한국은행이 상장ㆍ등록 및 금융감독위원회 등록법인 1,373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3ㆍ4분기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8.3%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기업들이 지난 3분기에 1,000원어치 상품을 팔아 83원을 남겼다는 뜻이다. 한편 부채비율은 99.0%를 기록, 한은이 지난 78년 조사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100%를 밑돌았다.
◇10개사 가운데 약 4개사는 적자= 전체적인 경상이익은 지난해보다 늘었지만 적자업체 비중은 35.1%로 전년 동기(30.1%)보다 5.0%포인트나 늘었다. 매출액 경상이익률이 떨어진 업체 수(58.1%)가 상승한 업체 수(41.9%)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 사이에서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세계경기 회복으로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그 수혜는 일부 우량 대기업이 누리고 있을 뿐 중소기업은 오히려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성종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매출액 경상이익률이 2.1%포인트 올랐지만 이 중 1.5%포인트는 저금리에 의한 금융비용 감소, 환율하락으로 인한 외화표시부채 감소 등에 따른 것이고 영업개선으로 인한 효과는 0.6%포인트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번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업체 비중은 40.8%로 1년 전(33.0%)보다 7.8%포인트나 급등했다. 일부 우량 대기업을 뺀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악화됨에 따라 한계기업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투자 외면한 채 운전자금 차입 늘어=경기가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기업의 설비투자 수요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경영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임금 지불이나 원료 구입을 위해 단기 운영자금을 차입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9월말 현재 단기차입금 비중은 53.6%로 6월말(50.9%)보다 증가, 지난 98년 이후 가장 높았다. 조 국장은 “부채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단기채무가 급증하는 것은 기업이 설비투자를 위한 장기차입을 미루고 임금, 원료구입 등을 위한 단기 운전자금만 빌리기 때문”이라며 “단기채무 비중이 높은 기업은 유동성 유지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지난 9월말 현재 부채비율이 200% 이하인 업체 비중은 84.1%로 전기대비 1.4%포인트 증가한 반면 500% 초과업체(자본잠식 포함)는 4.7%로 같은 기간 0.8%포인트 줄었다. 기업이 이익으로 채무를 갚으면서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조업의 차임금 의존도(25.3%)는 떨어졌지만 단기차입금 비중은 오히려 늘어났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