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삼성전자 제휴론 부상하이닉스반도체의 처리구도가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마이크론과의 매각협상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독자생존론이 강하게 부상한 데 이어 전략적 제휴를 포함한 '삼성 역할론'까지 튀어나오면서 점점 안개 속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채권단은 수정 협상안을 잠정 마련, 금명간 마이크론측에 전달할 예정이어서 어떤 식이든 조만간 밑그림이 그려질 전망이다.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이 하이닉스 처리를 위한 '삼성의 역할론'을 다시 한번 들고 나왔다.
마이크론과의 협상이 삐걱거리고 있는 가운데 나온 제휴론은 진행방향에 따라서는 하이닉스 처리는 물론 세계 반도체업계의 구도를 바꿀 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이해 당사자들은 제휴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조심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전문가들은 메모리 라인 인수 등 구조조정 차원의 짝짓기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지만 하이닉스 처리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삼성의 결단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 '삼성 역할론' 왜 나왔나
마이크론과의 매각협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던 중 나온 삼성- 하이닉스 제휴론은 알토란 같은 반도체기업을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외국업체(마이크론)에 내줄 수 없다는 산업정책적 측면이 짙다.
마이크론에 넘겨 세계 메모리시장의 지배력을 외국에 넘겨주기보다는 삼성을 끌어들여 산업경쟁력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협상이 깨져 독자생존을 택한다 해도 하이닉스 혼자 힘으로는 생존이 불투명한 만큼 삼성이 하이닉스의 원군으로 나서 시장질서를 지켜달라는 정부 차원의 메시지도 담겨 있다.
◇ 일단은 '제한적 협력론'에 무게
신 장관은 20일 "국내 반도체업계가 세계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삼성과 하이닉스가 전략적 제휴로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도 "경영권 등 구조조정 차원이 아니라 반도체 수출협력을 말한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마이크론처럼 하이닉스의 메모리 부문을 인수하는 게 아니라 ▦원가를 무시한 출혈경쟁을 자제(덤핑 방지)하고 ▦마케팅과 생산ㆍ기술 부문의 협력을 도모하는 제한적 협력을 의미한 것이다.
채권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양사가 선언적 의미에서라도 협력방침을 밝히면 매각협상에서 하이닉스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것"이라며 "협상이 깨져도 협력을 통해 삼성이 덤핑공세로 하이닉스를 압박하지 않으면 하이닉스의 생존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이 실현 가능성을 갖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도 크다. 전병서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양사는 메모리 기술, 생산공정, 기술력, 원가구조 등에서 현격한 차이를 갖고 있어 삼성 입장에서 전략적 제휴는 경제적으로 득이 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 대승적 결단 가능성도
김경모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삼성전자가 하이닉스의 메모리 라인 일부를 인수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채권단이 하이닉스에 대해 라인당 2조~3조원 규모에 이르는 시설투자 비용을 쏟는 데 한계가 있고 당연히 독자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만큼 삼성이 채권단의 우군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김 위원은 "0.12미크론급 공정을 신설하려면 1조5,000억원 정도를 들여야 하는 반면 하이닉스의 0.5미크론급 공정을 인수해 업그레이드한다면 1,500억~2,000억원 정도면 가능하다"며 경제적 측면에서도 삼성의 인수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민후식 한투증권 애널리스트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삼성이 일부 라인을 인수하면 나머지 라인 일부를 중국에 넘기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기술이전 등 시간이 지나치게 소요되는 게 단점이다.
김영기기자
이병관기자
<삼성전자 입장>
"검토한바 없다" 가능성 부인
하이닉스와의 제휴 가능성에 대한 삼성의 입장은 단호하다. '1+1=2'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윤우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부분 사장은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인수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해도 삼성은 여전히 업계 선두 기업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며 "마이크론의 인수협상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고 하이닉스 인수를 검토한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업계 선두기업이란 단순히 시장 점유율 1위가 아니라 기술력과 가격경쟁력, 업계 표준 창출능력, 차세대 제품 개발능력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결정되는 것인만큼 단순히 점유율 1위 달성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태신 삼성전자 부장도 "단순 제휴는 반도체협회 중심으로 있었던 일"이라며 "시장은 원가경쟁과 기술력 확보가 관건으로 양적으로 공장을 늘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영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