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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79> 정동 배재학당


근대 초기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비록 1871년 전쟁(신미양요)을 겪기는 했지만 1880년대에 상황이 변했다. 일본과 중국(청)을 견제하는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후발 산업국인 미국은 영국·프랑스 등과는 달리 영토적 지배보다는 선교·상업에 치중했다. 1882년 외교관계를 튼 후 미국 선교사들이 대거 들어온다. 배재학당 설립자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조선에 온 것은 1885년. 외국인들이 많이 살던 정동에서 학생을 모아 수업을 시작했다. 배재학당은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으로 평가된다. 영어와 함께 과학 등 교양과목을 가르쳤다. 배재학당은 조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성장한다. 앞서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정부가 설립한 것은 동문학(同文學)·육영공원(育英公院) 정도. 유학·과거제도에 묶인 이들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정부는 배재학당에 자금을 지원하며 외국어와 서양 기술에 능한 인재를 확보하려 했다. 1887년 고종은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이름과 현판을 만들어줬다. 사진은 1916년에 세워진 배재학당 동관.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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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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