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의 경제대국인 미국이 산 너머 산의 위기에 시달리며 세계 경제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은 채무상환 불이행(디폴트)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지만 신용등급 강등우려가 가시지 않는 가운데 실물경제 둔화마저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반면 부채감축을 위해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어 정부의 손발은 묶였다. 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기회복을 위해 다시 한번 '돈 풀기'에 나서더라도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지난 1991년 버블 붕괴 후 안이한 대응과 거듭된 정책실기로 장기불황을 맞았던 일본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2년여 만의 소비 감소'충격'=이날 미 상무부는 6월 소비지출이 전월에 비해 0.2% 감소했다고 밝혔다. 2009년 9월 이후 첫 감소세다. 고용시장의 불안과 성장둔화가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마저 얼어붙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제조업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제조업 지수 역시 2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7월 제조업 지수는 50.9로 2009년 7월 이후 가장 낮았다. 7월 제조업 지수는 전월의 55.3은 물론 시장의 전망치 54.5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에 앞서 나온 미국의 2ㆍ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3%에 불과했다. 이는 시장 전문가들의 예측치 1.8%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앞으로 발표되는 경제지표도 예상치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특히 오는 5일 공개될 고용지표에서 일자리는 8만5,000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월가는 이를 크게 밑돌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불안한 국가신용등급=이날 연방정부의 부채 상한증액과 관련된 법제화 작업이 상원의 표결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완료됐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는 이와 관련해 미국에 부여해온 최고 등급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무디스와 피치는 미국이 최고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정을 과감하게 감축해야 한다면서 추후 등급 강등이 가능한 '부정적 관찰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무디스는 "미국의 조치가 최고 등급인 Aaa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장기적인 적자 감축을 향한 첫 발걸음"이라며 "향후 과감한 감축 이행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피치도 이날 무디스 성명이 나오기 몇시간 전 미국의 신용 등급을 AAA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그동안 미국의 신용등급 문제에 대해 가장 강력한 경고를 보내온 S&P는 이번 연방정부 채무상한 증액과 관련해 여전히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경기부양카드 나오나=미국 실물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악화하면서 추가적인 경기부양책 여부가 주목된다. 당장 9일 예정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나 28일 잭슨홀 연례콘퍼런스에서 행해질 벤 버냉키 의장의 연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FRB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은 극히 제한돼 있다. 물가상승 압력이 점차 커지고 있어 돈 풀기가 쉽지 않은데다 '3차 양적완화(QE3)'를 강행하더라도 효과를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ㆍ4분기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연율 기준으로 3.1%로 FRB의 내부적인 목표치 2%를 크게 뛰어넘은 상태다. 미국이 일단 유동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시장의 불안심리를 해소하는데 주력한 뒤 시장상황에 따라 보다 구체적인 카드를 동원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입지가 좁아진 FRB가 '제로 금리' 기조를 상당 기간 더 유지할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시장을 안심시키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