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한은 글로벌 통화전쟁 대열 가세… 경기부양도 탄력 예고

金총재 "추경에 힘 싣고 정책공조 차원"<br>성장률 올 0.2%P·내년 0.3%P 오를듯<br>한은 신뢰성 추락·독립성에 상처 불가피

김중수(가운데)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금융통화위원들이 9일 기준금리 결정을 위해 서울 중구 한국은행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금통위원들이 맨 넥타이를 보면 푸른색 계통이 5대2로 많아 동결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이호재기자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를 방문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도대체 어디까지 내리란 말이냐" "이제는 정부 차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준금리 인하 압박에 대해 작심하고 반격한 것이었고 시장은 동결 쪽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9일 금융통화위원회 결과가 나오자 시장은 화들짝 놀랐다. 인하도 인하지만 김 총재의 변심을 납득하기 어려워서였다. 김 총재는 인하 근거를 나열했지만 시장은 옹색한 변명으로 받아들였다. 때늦은 금리인하는 '정책공조'의 끈을 잡았을지 몰라도 중앙은행 총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중앙은행 독립성까지 흔들어놓았다. 득보다 실이 컸다는 뜻이다.


◇성장경로 그대로인데 왜 내렸나=김 총재는 이날 간담회에서 이례적으로 금통위 다수결 투표 결과가 6대1이라고 공개했다. 지난달 금통위 금리동결 결정이 4대3으로 결정 난 것이 뒤늦게 의사록을 통해 밝혀지면서 혼란을 겪은 데 따른 조치였다.

당초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쥔 임승태(은행연합회 추천) 위원이 인하에 표를 던져 4대3 결정이 나는 '금통위원의 반란'이 예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인하를 주장했던 하성근(금융위원장 추천), 정해방(기획재정부 추천), 정순원(대한상공회의소 추천) 위원 등 3명에 3명이 추가로 합류했다. 매파로 분류되는 임 위원을 제외한 김 총재, 박원식 부총재, 문우식(한은 추천) 위원 등 3명이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가 인하 근거로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추가경정예산의 국회 통과와 글로벌 정책공조다. 하지만 지난달 성장률 전망을 낮출 때도 정부가 추경 편성을 예고했던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까지 우리 경제의 성장 회복을 외쳤던 한은이다. 결국 주요국 금리결정을 따라가는 '뒷북 금리'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통화전쟁 합류…금리인하로 내년 GDP 성장률 4% 넘어=정부 부처는 한은과 김 총재의 '결단'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병행할 수 있게 됐다"며 "뒤늦은 금리인하지만 경제회복 속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4ㆍ1부동산대책 등 부양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총재는 "추경과 금리인하에 따라 GDP 성장률은 올해 0.2%포인트 오른 2.8%, 내년 GDP 성장률은 0.3%포인트 오른 4.1%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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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양적완화로 인한 엔저 국면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한은의 금리인하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4번째(지난해 10월 이후)로 금리인하 및 양적완화 대열에 합류한 국가가 됐다. 글로벌 통화전쟁에 합류했다는 뜻이다. 당장 대내외 금리차로 외국인 투자가들의 쏠림 현상이 심각하던 채권시장은 한은의 금리결정에 따라 발 빠른 손익계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은의 상처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결 필요성을 주창하던 김 총재가 돌연 입장을 바꿈에 따라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는 더 떨어졌다.

추가 인하 가능성에 대한 타진도 시작됐다. 성장동력이 약해져 청와대나 정부가 압박하면 한은이 결국 백기를 들게 된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김 총재는 "기축통화를 가진 선진국은 0%대까지 가지만 뉴질랜드 등 나머지 나라는 2%대에서 왔다갔다 한다"며 "지금은 2009년처럼 5.25%에서 내려가는 게 아니다"라고 일단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랭하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총재 발언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부추겼다면 앞으로는 총재 발언의 무게가 상당히 떨어질 것"이라며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더욱 세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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