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땡처리장으로 둔갑한 '팸세일'

불황에 재고처리 고육지책<br>고가 제품 최대 90% 할인<br>브랜드 가치 추락 재판매<br>기형적 유통채널 만들수도

미국 유명 브랜드 DKNY의 탄생 25주년을 기념해 20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 마련된 DKNY 로고앞에서 모델들이 봄 신상품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3월말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세텍(SETEC) 전시장. SK네트웍스가 소유한 패션 브랜드의 패밀리세일 행사라 사람들로 가득했다. DKNY와 타미힐피거, 클럽모나코, 오즈세컨 등 고가의 브랜드를 최대 90%까지 할인해줬다. 백화점에서 69만5,000원에 판매했던 DKNY 셔츠는 80% 할인돼 13만원대에 살 수 있었고, 70만원짜리 클럽모나코의 오리털 파카는 2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타미힐피거나 오즈세컨, 엘리타하리도 최소 60%에서 최대 80%까지 가격을 확 낮췄다. 손님들은 '떨이 상품'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고, 일부는 업체에서 준 비닐백을 가득 채운 후 양손에 들고 갈 정도로 다량의 옷을 구입했다.

VIP고객의 특권으로 여겨졌던 패밀리세일이 재고 처리장으로 둔갑하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정상 유통채널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물량이 늘어나자 업체들이 고육지책으로 꺼내 든 카드다. 하지만 패션업계에서는 잦은 패밀리세일이 브랜드 가치 하락을 불러오고 이는 결국 업계 전반의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3월 한달간 공개적으로 패밀리세일을 진행한 곳은 SK네트웍스와 신세계인터내셔날, 인디에프, 컨버스 등 4곳이다.


포털사이트 카페에는 이들 업체의 패밀리세일 일정이 모두 공유될 뿐 아니라 초대권도 함께 올라와 누구든지 쉽게 다운받을 수 있다. VIP에게 직접 초대권을 발송하는 등 특별한 고객만 갈 수 있었던 기존의 방식과는 영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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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부터 5일간 행사를 진행한 신세계인터내셔널은 첫날 입장한 150명에게 선착순으로 스타벅스 커피쿠폰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고객 몰이에 나섰다. 행사 브랜드인 갭과 갭키즈, 바나나리퍼블릭의 할인율은 최대 90%였으며 9,000원부터 시작하는 균일가전도 마련했다.

수년 전에는 인쇄물 형식의 초대권과 명함 또는 사원증을 보여줘야 입장할 수 있었던 SK네트웍스의 패밀리세일도 인터넷에서 공유되는 명함만으로도 출입이 가능해졌다. 인디에프, 컨버스는 아예 입장 요건이 따로 없었다.

패션업계는 패밀리세일이란 명칭을 남발하는 일이 독으로 돌아올까 우려하고 있다. 패밀리세일은 충성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동시에 업체의 물류 및 보관비용을 절감한다는 윈윈 전략에서 나왔지만, 지금처럼 무작위로 초대권이 뿌려진다면 브랜드 가치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특히 고가의 수입브랜드일수록 세일을 경험한 고객들이 정상 유통채널을 기피하게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고객 한 명이 구입할 수 있는 물량을 제한하지 않아 온라인을 이용한 재판매가 횡행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A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성복 브랜드도 제품을 소각하는 방법으로 가치를 유지했는데 불황이 계속되니까 본사가 직접 나서 할인판매를 독려하고 있다"며 "패밀리세일 물량이 온라인으로 재판매되는 일도 종종 발생해 브랜드 가치 유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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