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11일 미 하원에서 증언한 내용을 요약하면 미 경제는 확장 국면이 지속됨에 따라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나는 반면 인플레이션은 매우 낮아 조기 금리인상에 나설 필요는 없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린스펀 의장의 이 같은 언급으로 이날 뉴욕증시를 필두로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상승세를 보였다. 그린스펀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해 이래 진행돼 온 완만한 달러 하락이 미국 자본시장에 역기능으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하는 등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약 달러 정책을 지원 사격함으로써 달러 약세에 따른 각국간 통화 전쟁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美 경제에 대해 이례적으로 낙관 전망=그린스펀 의장은 이날 의회에 제출한 반기 통화정책 보고서에서 “올해 미국 경제는 지난 1984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며 올 미국의 경제 성장률을 4.5~5.0%로 잡았다. 이는 지난해 예상치 3.75~4.75%보다 높은 것. 그린스펀 의장은 에너지 가격의 급등 등 예기치 않은 상황 변화나 경상수지 및 재정적자 확대에 대한 우려 표명은 했지만 올해 경기 확장이 나타나 조만간 기업들의 신규 인력 채용도 활기를 찾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미 경제 전반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이 같은 전망에 대해 지난 1984년 취임 이후 밝힌 전망 가운데 가장 낙관적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경기 회복 불구 저금리 유지 무게=그린스펀 의장은 이 같은 전망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확장 국면에서 나타나기 쉬운 인플레이션이나 이에 대처하기 위한 금리인상 가능성에는 무게를 두지 않았다. 실제 그는 “인플레이션이 매우 낮고 노동력이나 생산장비의 가동이 아직도 저조한 상황에서 FRB는 현재의 저금리 정책을 배제하는데 인내심을 갖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경제 성장의 본격적인 궤도 진입을 위해 현재의 저금리 정책이 당분간 더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 경제가 회복을 보이고 있지만 가속도를 붙이기 위해 조기 금리인상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란 그의 언급은 세계 투자자의 투자심리를 고취, 주식시장은 물론 채권가격도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린스펀 의장은 “저금리를 무한정 유지할 수 없으며, 인플레와 싸운다는 FRB의 주요 업무와 무기한 양립할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 장기 저금리 유지에 대한 시장의 기대심리를 차단했다.
◇약 달러 정책 지원사격, 통화마찰 심화 가능성=그린스펀 효과에 따른 세계 증시 및 채권시장 호조에도 불구하고 약 달러를 옹호한 그의 시각은 각국간 통화 마찰 심화의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린스펀 의장은 이날 달러 가치가 지난 1년간 떨어졌으나 하락은 점진적이었고, 특히 달러 하락에 따른 부정적인 효과도 자본시장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중앙 은행들의 시장개입과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수요 지속으로 달러 하락에 따른 역효과가 상쇄되고 있다는 것. 그는 특히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국채(TB)를 한꺼번에 매각할 경우 발생할 시장 혼란에 대해서도 “아시아 국가의 TB 보유 비율이 낮고, 장기채 금리가 단기 금리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 같은 그린스펀의 언급은 부시 행정부의 약 달러 정책에 대한 지원 사격으로 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현재 달러 약세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각국간 통화마찰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동안 유럽연합(EU)은 달러 약세에 따른 유로화의 상대적인 평가절상으로 수출 경쟁력 약화에 따른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해 왔다. 또한 아시아 주요 수출국도 달러 약세를 방어하기 위해 시장개입에 나서는 등 금융정책 운용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는 상태다.
<뉴욕=김인영특파원, 정구영기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