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IMF 4년…어제와 오늘우리나라가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은 지 4일로 꼭 4년째를 맞는다. 이날은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IMF프로그램이 시작된지 4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4년간은 폭풍노도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대마불사의 위용을 자랑하던 재벌들이 태국에서 시작된 삭풍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으며 절대 망하지 않는다던 은행들도 힘없이 무너졌다.
중산층은 몰락했고 실업자가 급증해 환란의 아픔을 실감해야 했다.
그러나 금모으기로 시작된 국민들의 환란극복 노력은 똑같이 벼랑으로 몰렸던 동남아국가중 가장 일찍 IMF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했다.
정부는 지난 8월 IMF에 갚아야 할 돈을 모두 상환, 2004년 5월로 예정되어 있었던 IMF프로그램을 3년이나 앞당겨 졸업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표로만 보자면 분명 우리는 환란에서 벗어난 상태로 볼 수 있다. 스탠더드 앤 프어스(S&P)와 무디스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은 최근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기도 했다.
바닥을 드러내던 외환보유액도 1,000억원을 넘어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더 많이 남아있다. 외환위기 직후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해 온 기업, 금융, 노동, 공공부문의 4대 개혁은 정권말기로 들어서면서 피로증후군을 보이고 있으며, 150조원이 넘게 투입된 공적자금은 나라살림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부실기업처리도 지연되고 있어 언제 국가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뇌관으로 작용할 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IMF 4년 한국경제의 흐름과 과제'보고서에서 지난 4년동안 유동성 쇼크→위기탈출→구조조정지연→경기침체를 거친 우리 경제는 테러충격으로 새로운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경고했다.
◇ 기업과 산업의 변화
지난 4년동안 재계의 판도는 몰라보게 변했다. 우선 30대 그룹 가운데 삼성, LG, SK 등 빅3와 다른 그룹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현대가 계열분리되고 대우가 해체의 길을 걸으면서 재계 빅3가 30대 그룹의 자산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9%로 절반가까운 수준까지 올라왔다.
지난 97년이후 5년동안 30대그룹에 속한 44개 그룹 가운데 기아, 한일 등 16개 그룹이 워크아웃, 법정관리, 화의절차를 통해 규모가 축소되거나 부도로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규모보다는 수익성을 중시하는 경영풍토가 폭넓게 확산됐으며 CEO의 역할도 크게 강조됐다. 외형위주로 성장한 기업들이 무더기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대그룹이 향유하던 프리미엄도 사라졌다.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침체와 회복이 반복되면서 업종간 명암도 크게 엇갈렸다.
반도체, 컴퓨터, 전자부품, 통신기기 등 정보기술(IT)관련산업이 지난 97년에 비해 2배이상 규모로 성장하고 조선 역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대량수주를 확보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자동차, 철강, 기계 등 주력 전통산업들도 지난 99년부터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섬유, 건설, 석유화학은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금융 구조조정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변화를 실감해야 했다.
기업들에 대한 부실대출과 무분별한 외화차입으로 환란의 원인을 제공했던 금융기관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수많은 금융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합병절차를 거쳤다.
지난 97년말 2,101개에 달하던 금융기관수는 지난 10월말 현재 1,557개로 줄어들었다. 동화, 경기, 충청 등 11개 은행을 비롯한 600개 금융기관이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150조가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선진금융에 한참 뒤졌으나 대형화와 건전성을 중시하는 경영형태도 빠르게 확산됐다.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회사인 우리금융지주회사가 출범했고 소비자금융의 대표주자격인 국민과 주택은 한몸으로 합쳐졌다. 이런 흐름에 동참하기 위한 은행간 짝짓기 작업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 결과 환란 직후 130조원으로 추정되던 은행권의 부실채권은 올 상반기 40조원대로 뚝 떨어졌다. 재정경제부는 은행의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부실채권비중은 9월말 현재 5.04%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 남은 과제
외환위기가 우리 경제에 던져준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앞으로 무엇으로 생존할 수 있는가'이다. 초고속 성장을 주도하며 국가경제에 캐쉬 카우역할을 해 오던 제조업이 지난 4년동안 초토화됐기 때문이다. 차이나쇼크로 불리는 중국의 성장은 갈 길이 먼 한국경제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조업붕괴, 세계적인 경기침체, 이완된 개혁의지 등으로 우리 경제가 제2의 위기를 당할 위험이 커졌다고 지적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는 비전제시가 필수적이다.
불확실성 증대로 위험은 높아만 가는데 삶의 질 향상, 첨단산업 육성, 열린세상 등 사탕발림식의 비전으로는 국가의 힘을 결코 한 군데로 결집할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의 국가경영전략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되는 4대부문 구조조정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임은 물론이다.
내년 선거를 의식해 장기적인 국가경영을 생각하기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정치권도 경제에 큰 부담이다.
경제정책들이 국회에서 왜곡되거나 변질되고, 정쟁으로 국민들의 역량이 흐트러지는 한 경제위기는 영원히 진행형일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유용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환위기와 극복과정에서 경험했던 시행착오에 대해 철저하게 학습하는 것이 재발을 막는 첩경"이라고 강조했다.
박동석기자
[경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