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현대분가] "믿을 사람 장남뿐" 고비마다 실천

 - 정주영회장 재산분할 방식 -1975년말. 60세의 정주영(鄭周永)현대건설 사장은 첫째 동생인 정인영(鄭仁永)부사장(현 한라그룹 명예회장)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너도 이제는 독립해야 될 것 같다』. 정인영명예회장은 그자리에서 두말없이 보따리를 쌌고 정주영명예회장은 그 뒤를 봐줬다. 동아일보 기자를 지내다 53년 8월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해 20년이상 현대맨으로 체질이 굳어 졌으나 중동진출을 둘러싸고 자신과 의견충돌을 빚자 鄭명예회장이 일방적으로 내린 단안이었다. 1999년 3월. 84세의 정주영명예회장은 지난 57년 이후 자신과 한몸이 되어 오늘의 현대를 일궜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곁에서 지켜온 마지막 형제인 정세영(鄭世永)현대차명예회장(71)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25년전과 똑같은 말을 했다. 『현대산업개발은 매출이 2조원이 넘는 알짜배기 회사다. 자동차를 조카인 몽구에게 넘겨주고 너도 네 인생을 새롭게 설계해라.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지난 32년간 자동차와 함께 인생을 보냈지만 자동차경영권을 고집했던 정세영명예회장은 이제 정인영명예회장이 그랬듯이 건설인으로서 새로운 기업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정주영명예회장은 이에앞서 순영(順永)성우그룹명예회장, 상영(相永)KCC명예회장 등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형제들을 분가시켜 현대와 특수관계를 통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엄격한 가부장적 교육을 받은 정주영 명예회장은 형제들, 2세교육 있어서 농사꾼의 철학으로 형제와 자식농사를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가 2세 교육을 위해 들었던 매는 회초리가 아니라 몽둥이였다. 정주영명예회장은 하지만 「장남은 곧 그 집안의 아버지」라는 특유의 철학을 갖고 이를 몸소 실행해 왔다. 형제들을 필요한 때가 되면 한명씩 한명씩 계열사를 떼내주며 분가시켜 오늘의 한라와 성우, KCC그룹을 일구게 했고 정세영명예회장에게도 알짜배기 현대산업개발을 넘기며 독립을 종용한 것이다. 정주영명예회장이 정세영명예회장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그룹의 주력인 자동차 경영권을 장남인 정몽구(鄭夢九)회장에게 넘겨주려 했던 이면에도 바로 이런 장남론이 작용했을 것이란게 현대내외부의 분석이다. 정주영명예회장의 이런 독특한 장남책임론은 역시 7남매의 장남이었던 아버지 정봉식씨(작고)의 엄격한 유교주의에서 싹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정주영명예회장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4번이나 가출했지만 번번히 아버지에게 잡혀 끌려왔던 당시를 회상하며 밝힌 회고담에서 적나라하게 감지된다. 『나는 네가 장남이 아니었으면 찾지도 않았다. 네가 잘못되면 네 동생들은 누가 책임지느냐』 정주영 명예회장의 8남 1녀(2명은 작고)의 2세들은 하지만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정주영명예회장의 철학이 깊게 배어있는 현대문화가 2세경영체제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것인지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승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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