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은행

[리빌딩 파이낸스 2015] '글로벌뱅크' 이끈 싱가포르 굽타 DBS 은행장 서울경제신문 인터뷰

'가고보자 식 해외진출' 99% 실패… 은행, 육하원칙 공략매뉴얼 갖춰라

실적 부진한 시장 정리… 작년 해외서 38% 수익

국내 은행들 벤치마킹을

"은행, 글로벌 시장진출 성공비결은 선택과 집중·문화적 융합·시스템"



"'육하원칙(five W's and one H)이 명확히 서지 않은 '일단 가고 보자(Just Go)'식의 해외진출은 99%가 실패로 끝납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매뉴얼이 나와 있어야 합니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해외진출의 교본으로 삼을 만한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DBS의 자산은 지난해 기준 4,406억싱가포르달러로 한화로 375조원 정도다. 국내 3대 금융지주와 자산은 비슷하지만 지난해 수익은 96억2,000만싱가포르달러(약 8조900억원)다. 지난해 국내 은행 중 가장 높은 순이익을 올린 신한은행(1조7,341억원)의 5배에 달한다.


싱가포르의 금융환경이 국내보다 나은 게 아닌가 싶지만 녹록지는 않다. 싱가포르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1.68%로 오히려 국내(1.79%)보다 낮다.

비결은 해외수익이다. DBS는 지난해 전체 수익의 38%를 해외에서 올렸다. DBS는 홍콩·중국·태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만도 33억2,000만싱가포르달러의 수익을 기록해 싱가포르에서 낸 수익(59억5,000만싱가포르달러)의 절반 이상이나 됐다. 국내 금융지주의 해외수익 비중은 아직 5% 안팎이다.

DBS를 이끄는 피유시 굽타(55)최고경영자(행장)을 싱가포르 본점에서 만났다. DBS 행장이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BS가 글로벌뱅크로 성공한 비결을 묻자 굽타 행장은 "DBS는 글로벌뱅크가 아니다. 우리는 철저히 '아시안 뱅크'"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DBS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는 세계 전역에 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위기 이후를 글로벌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했습니다. 중동 등 수익이 나지 않는 일부 시장은 과감히 정리했습니다. 그 후 아시아 지역을 세분화해 접근했습니다. 아시아에 기반을 둔 은행의 해외진출은 어떤 형태로든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씨티그룹을 거쳐 2009년 DBS 경영을 맡은 굽타 행장은 취임과 동시에 그해를 해외진출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싱가포르를 제외한 아시아 시장을 홍콩·중국·태국·인도·인도네시아 등 5개로 나눠 진출전략을 재구성했다. 중국은 기업 영업, 인도는 신흥 부유층 영업, 인도네시아에서는 중소기업 대출에 집중하는 전략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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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맞춤형 전략은 적중했다. 홍콩법인의 이익은 2009년 13억6,600만 싱가포르달러(1조1,586억원)에서 2014년 19억 싱가포르달러(1조6,115억원)로 40% 성장했다. 태국과 중국법인 역시 같은 기간 합산 이익이 4억900만 싱가포르달러(3,469억원)에서 9억5,000만 싱가포르 달러(8,057억원)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진출 지역에 맞는 전략과 더불어 굽타 행장이 강조한 해외사업의 성공 비결은 '문화적 융합'이다. "해외 진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문화적 융합이란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싱가포르 본사부터 인도네시아, 중국의 작은 지점 직원까지 모두 DBS라는 하나의 완벽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곧 해외진출의 시작이자 성공 비결의 핵심입니다."

본사와 해외법인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DBS 대만에서 인수한 보와뱅크(Bowa Bank) 사례로 이를 설명했다. DBS는 2008년 40여 개 점포를 보유한 누적 적자은행인 보와뱅크의 우량 자산 부문을 사들였다. 2009년 수익은 1,400만 싱가포르 달러(119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597억원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그는 "시간을 들여 인력과 IT 부문을 융합해 본사와 하나의 조직이 되는데 최소 3년이 걸린다"면서 "보와뱅크에도 초기에는 본사에서 100여명을 파견해 조직 융합에 주력했고 지금은 거의 현지 직원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해외 법인과 본점의 기업 문화가 제대로 어우러 질 수 있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얘기다. 그는 "인수합병(M&A)로 인해 생긴 해외 조직은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기가 어려운데 그들을 어떻게 'DBS구성원'으로 아우를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행장부터 어느 국가 어느 지점의 텔러까지 DBS라는 문화를 공유해 나라를 막론하고 어떤 구성원도 자신이 그 고객 앞에서는 DBS 대표라고 생각할 때 성공한 해외진출이 되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해외 지점에 본사와 같은 IT서비스를 구축하고 다음 해외직원의 마음가짐인 소프트웨어까지도 '당신은 DBS의 가장 소중한 인재'라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일이 해외진출 성공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 해외진출을 '성장 엔진'이라고 표현했다. 굽타 행장은 "DBS는 지난 5년간 어려운 금융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해왔는데 수익성을 다변화했고 또 해외시장을 포트폴리오로 나눠 리스크를 분산한 것 역시 적중했다"며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 전략이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굽타행장은 아울러 "일단 나가고 보자'식의 해외 사업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진출은 아주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 아래 움직여야 합니다. 다른 은행들이 가니 경쟁적으로 '우선 나가고 보자 식'의 진출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철저한 사전 전략과 함께 필요한 것이 해외사업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다. 굽타행장은 "해외진출은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존해야 한다"며 "어떤 뛰어난 사람이 운 좋게 개척해서 만든 해외 시장은 지속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은행들의 해외진출 초기 단계에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사람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뛰어난 개인이 만들어내는 성과는 단기적인 '반짝' 퍼포먼스에 불과합니다. 한국의 은행들도 이를 지속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싱가포르= 김보리 기자 bori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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