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의 쟁점은 동거를 하며 실질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부부강간죄가 인정될 수 있느냐였다.
그동안 대법원이 이혼의사의 합치가 있는 등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될 수 없는 경우에는 배우자에 대한 강간죄를 인정해왔지만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간죄를 적용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6일 아내를 폭행하고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상 특수강간 등)로 기소된 강씨에 대해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을 경우 강간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지난 1970년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있을 때에는 설령 남편이 강제로 아내를 간음하였다고 해도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기존 대법원 판례는 변경됐다.
재판부는 "형법 제297조는 부녀를 강간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형법이 강간죄의 객체로 규정하고 있는 '부녀'란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상관 없이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법률상 처도 강간죄의 객체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부부 사이에 민법상의 동거의무가 인정되고 있고 여기에는 배우자와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포함되지만 동거의무에 폭행, 협박에 의해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까지 내포돼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2001년 결혼한 아내와 잦은 불화를 겪던 중 아내가 밤늦게 귀가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지난 2011년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남편이 부인을 폭행·협박으로 반항을 하지 못하게 해 강제로 성관계를 할 권리까지 있다고는 할 수 없다"며 강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고 신상정보공개·고지 7년과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명했다.
2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이 강씨의 혐의 사실은 그대로 인정해 신상정보공개·고지와 전자발찌 부착명령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징역 3년6월로 형량만 감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혼인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법리를 명확히 함으로써 법률상 처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