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대해 처음으로 이행을 전면 거부, 그동안 숱한 갈등을 빚어온 정운찬식 동반성장 정책이 좌초 위기에 빠졌다.
전경련은 배전반 등 3개 품목의 적합업종 선정에 대한 '사안별 보이콧'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어찌됐든 동반위의 결정을 전면 배척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동반위는 즉각 전경련의 수정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 양측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호합의에 따른 동반성장 추진'이라는 대원칙이 무너진 동반위는 조정 기능을 상실한 채 유명무실한 상태로 전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전경련은 이번 적합업종 논란과 관련,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 신청을 할 방침이다. 결국 적합업종 등 동반성장 정책은 동반위가 아니라 정부기구인 중소기업청이 최종 결정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사태는 지난해부터 정 위원장의 동반성장 관련 언행과 위원회 운영이 편파적이라는 비판이 높아지면서 충분히 예견돼왔다. 재계는 그동안 일방통행 식 적합업종 선정과 초과이익공유제 강행, 동반성장지수 추진 등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앞세워 묵살해오는 과정을 반복했다. 특히 그는 논란이 빚어질 때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계약은 을사(乙死)조약(을이 죽는 조약)"이라는 포퓰리즘 식 여론몰이를 하며 재계 의견을 외면해왔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배전반ㆍ유기계면활성제ㆍ가스절연개폐장치의 적합업종 선정에 대해 재계는 "대ㆍ중소기업 간 자율합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시정을 요구했지만 동반위가 전혀 수렴하지 않았다"면서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정부와 여론의 압력에도 불구, 재계가 이처럼 반발하는 이유는 작금의 적합업종 선정이 대기업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임상혁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유기계면활성제를 생산하는 5개 중견ㆍ중소기업을 보호한다며 내수의 32%를 점유하고 있는 대기업 판매량을 매년 10%씩 감축하도록 권고했다"며 "이는 해당 대기업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와는 달리 중소업계는 전경련의 태도를 비판하며 동반위 결정을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문제가 있다면 동반위에 나와서 이의를 제기해야지 뒤에 숨어서 떠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6일 전기공업협동조합 등 해당 중소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공식 기자회견을 열 계획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