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4위 경제국인 일본과 독일의 척추 역할을 해온 '알짜' 장수기업들이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자본에 속속 넘어가고 있다. 친족을 통한 가업승계 형태로 우수한 기술력을 대물림해온 이들 기업이 후계자를 찾지 못해 경영권 상속에 비상이 걸리자 차이나 머니를 중심으로 한 해외자본이 이들을 쓸어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과 독일의 장수기업들은 뿌리 깊은 역사와 여기서 비롯된 우수한 기술력·품질 등으로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 시니세(老鋪·오래된 점포), 미텔슈탄트(Mittelstand·중견기업) 등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비즈니스 용어로 널리 통용될 정도다.
하지만 산업화 초기부터 국가 경제의 허리 역할을 맡아온 이들 기업이 최근 저출산 고령화와 세대별 가치관의 차이 등으로 가업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지 못해 가족이 아닌 회사 직원 또는 전문경영인에게 기업을 물려주거나 아예 폐업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일본의 신용조사기관 도쿄쇼코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문을 닫은 일본 중소기업은 2만8,943곳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들의 주된 폐업이유 가운데 하나는 '승계자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가 지난 29일 전국 28만4,41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사장이 60대인 일본 기업 중 53.9%는 후계자를 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 기업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독일 만하임대 조사결과 1990년대 70~75%에 달하던 친족승계 비율은 현재 50%까지 떨어졌다. AFP통신은 독일상공회의소(DIHK) 분석을 인용해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최근 의식이 변화된 젊은 층들이 가업을 이어받기 꺼리는 것도 주된 원인"이라고 전했다.
경쟁력을 갖췄으면서도 경영승계가 안돼 회사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급기야 이들 기업의 경영권 이양은 국내는 물론 글로벌 인수합병(M&A)으로까지 그 방식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중국 자본은 높은 기술력을 갖춘 이들 장수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가 끊긴 일본의 장수기업을 노리는 대표주자는 중국의 시틱그룹이다. 시틱그룹의 사모투자회사인 시틱캐피털파트너스재팬은 지난 2010년 일본의 터치패널필름 제조업체인 히가시야마필름을 15억엔(약 150억원)에 인수했다. 1949년 설립된 이 회사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아왔으나 M&A 이후 중국 공장 3곳을 통합하는 등의 구조조정을 단행해 지난해에는 2010년 대비 4배가 넘는 24억엔의 수익을 냈다. 시틱캐피털의 나가노 히로노부 전무는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일본 중소기업은 200~300곳 정도"라며 이 가운데 80%가량이 기업 승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체"라고 전했다. 미국 투자기업인 고든브러더스 역시 소매 및 의류 업체를 중심으로 일본 장수기업에 최대 100억엔을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의 중견 장수기업들도 중국 왕서방 자본의 먹잇감이다. 2012년 중국의 샨이중공업은 독일의 1위 콘크리트 펌프 제조업체 푸츠마이스터를 5억2,500만유로(약 7,224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중국의 유럽계 기업 인수 중 가장 거래규모가 큰 사례로 꼽혔던 이 M&A 이후 샨이중공업은 독일의 2위 콘크리트펌프 업체 슈빙도 연이어 사들였다.
독일 강소기업을 향한 중국 자본의 러브콜은 이후에도 계속돼 세계 1위 자동차 도어록 업체 키케르트, 세계 2위 지게차 생산업체인 키온, 반도체 기업 프레마 등이 모두 중국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고 AFP통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