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환율하락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언급한 데 대해 한국은행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의 강도 높은 의지를 무시할 수 없지만 실제 동원 카드가 마땅찮은 처지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은은 대통령의 직설적인 발언으로 자칫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환율 조작국’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은은 일단 노 대통령이 언급한 특단의 대책이 재정경제부가 4일 발표한 환율시장 안정대책을 언급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은은 “시장을 원천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해외투자 활성화 등의 제도 보완은 재경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한은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이 그 정도의 방안을 가지고 특단의 대책이라고 말했겠느냐”고 반문한 뒤 “한은으로서도 뭔가 강력한 카드를 내놓아야 하는데 적절한 수단이 없어 압박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외국환평형기금의 적자 탓에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추궁을 받은 기억 때문이다. 또 부동산 시장의 불안으로 금리 인하는 고려 대상에서 아예 제외돼 있다.
특히 한은은 민감한 환율 문제에 대통령이 직접 나선 데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또 재경부가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두루뭉술한 표현 대신 공개적으로 ‘환율 안정화 노력’ ‘스무딩 오퍼레이션’ ‘국제적 공조’ 등의 환율 대책을 직접 언급한 데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외환이나 환율은 중앙은행 총재도 우회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게 국제적 관례”라며 “미국 등이 환율 조작국이라고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5월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은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환율이 왜곡됐다”며 공격한 바 있다. 미국 정부도 ‘환율 조작국’ 지정 여부를 중국 위안화 절상의 압박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