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한국의 장수기업<br>유한양행, 창업주 타계후 주식 사회환원<br>금호전기, 친환경 조명으로 성장 돌파구<br>한국도자기, 30년동안 무차입경영 지속<br>오리온 '효자' 초코파이 누적 매출 1조
| 오리온(옛 동양제과)의 제과공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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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통운의 소화물 배달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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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박승직상점의 1930년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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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양행의 주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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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약품의 1950년대 애니메이션 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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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8월, 서울 배오개(지금의 종로 4가)의 북적대는 저잣거리에 한 포목상이 문을 열었다. '박승직 상점'이라는 간판이 붙은 이 상점은 이후 동안 한국의 근ㆍ현대 경제사와 궤를 같이 하며 성장, 오늘날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창립 114년을 맞이한 '두산'이다.
1951년 박승직 창업주의 장남인 고 박두병 회장이 '두산'시대를 연 이후로 종로에서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포목점은 OB맥주로 상징되는 소비재 사업을 거쳐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중장비 사업을 거느린 글로벌 인프라기업으로 도약했다. 한국기네스협회는 두산의 모태가 된 '박승직 상점'을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기업'으로 인정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역사가 200년 이상인 장수기업은 41개국에 5,586개사가 있다. 하지만 산업화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100년을 넘긴 장수기업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 세기 이상을 살아남은 국내 기업은 두산, 동화약품, 우리은행, 신한은행, 단성사 등 5개 뿐. 50년을 넘긴 기업도 채 1,000개에 못 미치는 907개에 불과하다. 한때 재계에서 내로라하던 적잖은 기업들은 외환위기와 시대의 변화에 휩쓸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렇다면 급변을 거듭한 한국 경제 환경 속에서도 반 세기 이상을 살아남은 장수기업들의 생존 비결은 무엇일까. 서울경제신문이 창간 5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수기업들을 분석한 결과, 이들에게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윤리경영', 시대에 따라 변신하는 '혁신경영', 외형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내실경영', 확실한 캐시카우를 발굴하는 '알짜경영'이라는 공통된 특징들이 뚜렷하게 부각됐다.
'윤리경영'과 장수의 상관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기업은 20년대에 설립된 유한양행이다. 1926년 설립된 유한양행의 윤리 정신은 창업주인 고 유일한 박사가 1971년 3월에 남긴 유언에 반영된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라던 그의 유지를 받들어 유한양행은 유 박사의 타계 이후 그의 모든 주식을 사회에 기부해 '국가와 동포에 도움을 주는 회사'라는 창업 정신을 지켜나가고 있다.
창업주와의 혈연관계와 상관없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전문경영인'시대를 국내 최초로 연 회사 역시 유한양행이다.
이 같은 뿌리 깊은 윤리경영의 토양 속에서 회사 직원들도 스스로를 사측에 고용된 노동자라기 보다 함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유한양행은 1975년 노조 설립 이후 한번도 노사 분규가 없는 '상생'의 길을 걷고 있다.
사회적 책임에 충실한 기업만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듯이, 시대 변화를 읽고 이에 적극 대응한 혁신 능력 또한 기업의 '장수 DNA'라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경영여건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꾸준한 혁신을 통해 성장동력을 장착해야만 한다.
1935년 설립된 금호전기의 출발은 수도미터기 생산업체였다. 이후 벽열전구 등 조명 전문업체로 변신한 금호전기는 조명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하자 2001년 액정디스플레이(LCD)의 핵심부품인 냉음극형광램프(CCFL)와 백라이트유닛(BLU)을 개발해 '형광등 회사'에서 '첨단 광소재'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아울러 환경과 에너지효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데 대응, 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한 친환경 조명 사업으로도 재빨리 뛰어들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굴뚝 산업에서 정보기술(IT), 녹색 기술 영역까지 변신을 거듭하며 성장의 돌파구를 찾아 온 금호전기의 행보야말로 기업의 존속을 위한 '혁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때로는 무리한 변신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97년 외환위기 직전에 무리한 투자로 사업 확장을 노렸던 많은 기업들은 갑작스럽게 터진 경제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안정적 재무관리로 튼튼한 기업 체질을 유지하는 '내실경영'이 없다면 기업은 작은 균열에도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은 97년 외환위기와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1943년 설립된 한국도자기는 이같은 일찌감치 겪은 위기에서 내실경영의 중요성을 체득한 이래 무차입 경영의 전통을 고수하며 장수기업의 대열에 합류했다. 사업 초기였던 1950~60년대에 매출의 20~30%가 이자로 나갈 정도로 과도한 빚에 시달렸던 김동수 회장은 73년 모든 부채를 갚은 뒤로 무차입을 실천하며 '내실'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1956년 설립돼 반 세기 넘게 역사를 이어 온 오리온(옛 동양제과)의 경우 이런 모든 모든 요인들 못지 않은 장수의 비결은 '초코파이'다. '국민간식' 초코파이는 74년 개당 50원의 가격으로 출시된 이래 36년 동안 누적 매출 1조원을 돌파, 오리온의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쇼박스, 메가박스 등 영화사업부문과 OCN, 온스타일 등 미디어 부분으로 영역을 대폭 확대한 오리온의 성공 뒤에는 온 국민의 동전을 끌어모은 '알짜상품'초코파이가 버티고 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