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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오는 2023년까지 대학 입학정원을 16만명 줄이는 대학 구조개혁 방안을 지난달 발표한 후 교육계는 물론 지역 간 찬반논란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 필요성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만 교육부가 대학을 평가해 등급별 정원감축을 유도한다는 방침에 대한 반발이 작지 않다. 강제로 정원을 감축하면 수도권 쏠림현상이 더 심해지고 결국 지방대·전문대들만 피해를 입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감축 찬성 측은 그동안 대학 자율조정이 별 성과가 없었던 만큼 정원감축은 정부 주도로 고등교육 생태계를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 견해를 싣는다.
● 찬성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자율에 맡기면 지방대·전문대 타격
일관된 대학평가로 특성화 유도해야
현재 입학정원이 유지되면 10년 후에는 전국적으로 16만명 정도 정원미달이 생긴다고 한다. 대입정원 1,600명 규모의 대학 100개 정도가 문 닫을 수 있는 규모다. 이렇게 되면 부실대학이 속출하고 우리 고등교육의 기반이 붕괴할 수도 있다.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줄어드는 학생 수만큼 대입정원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대학 구조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피할 수도 없는 터라 대부분의 대학들도 정원감축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방법론에는 각자 여건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 특히 정부개입의 정도에 생각이 갈린다.
일부 대학은 구조개혁을 수요자의 선택과 대학 자율에 맡기라고 한다. 학생이 외면하는 대학은 문을 닫는 것이 순리고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해 정부는 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반대로 입학자원의 급격한 감소가 대학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정부가 나서서 대응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구조개혁안을 보면 일단 정부는 방관자보다 적극적인 구조개혁 관리자의 역할을 선택했다.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교육여건과 질을 평가하고 결과에 따라 대학들을 5등급으로 나눈 후 각 등급별로 차등적인 정원감축량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아쉬운 대목도 있지만 고육지책이라 생각한다.
당국의 선택에 수긍하는 이유 가운데 첫 번째는 대학 자율에 의한 구조개혁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학은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하고 몸집을 키우려는 속성이 있다. 구조개혁 총론에는 찬성해도 자신들의 대학은 예외여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대학 자율에 구조개혁을 맡긴다는 것은 그 의도와 달리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시장에 맡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고등교육 시장은 완벽한가. 대체로 부정적인 듯하다. 어느 대학이 잘 가르치고 경쟁력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가운데, 대학의 소재지와 학벌주의라는 외적 요인이 학생들의 대학 선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구조개혁을 시장에만 맡기면 지방대학이 우선 어려워지고 전문대학도 자칫 고사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립과 사립, 연구중심과 교육중심대학,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은 고등교육 생태계의 일부분이다.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시장은 이런 생태계를 그리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대학은 지역의 교육·문화·복지의 거점이다. 일자리를 제공하며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지역에서 대학이 갑자기 사라질 때 지역사회가 감당할 충격은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수도권도 해당된다.
요컨대 대학 구조개혁은 고등교육 전체를 바라보는 큰 틀에서 추진돼야 한다. 다른 사회적 요인까지 고려하면서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정하고 질서있는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답은 대학평가에 있다. 고등교육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일관성 있게 평가해야 한다. 대학별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특성화 발전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전담 기구의 설립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참에 국회가 대학구조개혁과 평가를 위한 법률을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 구조개혁은 위기라기보다 기회일 수도 있다. 작고 강하면서 특성화된 대학을 많이 만드는 구조개혁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 반대 박정원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
수도권 쏠림으로 문닫는 지방대 늘어
모든 대학 동일비율 감축 윈윈전략을
시뮬레이션이란 용어가 있다. 어떤 계획이 목표대로 잘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을 경우 그 결과를 미리 예상해보는 것이다.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대학 구조조정 정책에 바로 이 시뮬레이션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교육부는 고교졸업자가 계속 감소해 2023년에 이르게 되면 대입예정자가 대입정원보다 16만명이나 부족하게 되니 사전에 그만큼 정원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원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가 문제로 남는다. 대학평가를 통해서 전국대학을 5등급(최우수-우수-보통-미흡-매우미흡)으로 나눈 후, 최우수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은 강제로 입학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세계최초로 서열 외에 등급까지 갖게 되는 셈이다. 웃을 일이 아니다. '매우미흡'이 아니라 '미흡'에만 속하게 돼도 그 대학은 끝이다. 미래가 없는 것이다. 미흡한 대학을 선호할 학생이 어디 있겠는가.
정책 입안자들은 구조조정 방안으로 대학 110개 정도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방대학 90~100개와 경기·인천 지역의 대학 10개가량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정원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것이 정책목표인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대입정원이 성공적으로 감축됐다고 하자. 교육부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했으므로 앓던 이를 뺀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일까.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강압적 대학구조조정에는 반드시 피해자가 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 대학이 사라진 지역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가장 먼저 지역을 강타할 태풍은 지역 경제의 침체다. 대학은 지역의 최대 생산·소비집단인데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경기는 하루아침에 얼어붙고 갑자기 방들이 남아돌아 집값이 크게 떨어진다. 학생들로 붐비던 거리는 활기를 잃고 조용한 시골거리로 바뀐다.
지역 주민들은 대학에서 열던 공연과 전시회, 저명인사들의 강연을 더 이상 접할 수 없다. 평생교육원에서 배울 일도 없다. 대졸노동력을 구할 수 없게 된 기업체들은 하나씩 지역을 떠날 것이다. 대학이 떠난 지방은 창의력 없는 도시로 전락할 것이다. 지방은 인구가 크게 감소하고 수도권 집중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를 예상못했다면 정말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대학과 학문을 취업률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교육부는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으로 일부 지방대학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지만 이는 착각에 불과하다. 특성화 분야를 제외한 다른 분야가 시들어버린 대학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 것임은 자명하다. 인문·사회·자연·상경·공학·예술·의학 분야 등이 모두 있는 수도권의 종합대학을 외면하고 특성화 분야만 커진 기형적인 지방대학을 선택할 학생이 얼마나 될까.
지방대학이 특성화한 그 분야가 수도권 대학에 없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교육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선택한 특성화로 인해 지방대학의 경쟁력은 오히려 더욱 약화될 것이다.
대안은 간단명료하다. 고통 분담의 원칙에 따라 전국의 모든 대학이 매년 2~3%씩 동일한 비율로 학생을 감축하고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평균만큼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고 대학을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수도권과 지방 및 전국 모든 대학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윈윈전략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