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조직과 개인기에 의존하는 조직 간에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바로 개인의 지식을 공유하고 전수하려는 마인드가 자리 잡았는지 여부가 아닐까 싶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조직은 개인적 차원의 '감'이나 '통찰력'으로 불리는 '암묵지'를 조직의 구체화된 지식인 '형식지'로 바꾸는 데 능하다.
기록하는 문화가 잡혀 있어 개인의 노하우는 후임에게 전수되고 크게는 조직에 공유된다. 데이터가 하나둘 더해진다는 것은 시스템이 더 폭넓고 정교하게 숙성된다는 뜻과 같다.
신참자가 드러난 것의 이면을 살필 수 있는 것도 빡빡하게 운용되고 있는 시스템 때문에 가능하다.
반면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조직은 역량 축적이 제대로 안돼 실수와 시행착오가 잦고 낭비도 심하다.
그래서 일류 조직은 어김없이 구성원의 노하우와 경험에 따른 지식을 체계화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일본이나 유럽의 50년 된 회사와 5년 된 회사의 결정적 차이로 축적된 데이터의 양을 꼽는다. 실패한 일을 쉬쉬하고 감추기에만 급급한 조직은 모든 부문에서 단절의 연속이고 실패도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국내 금융산업이 제조업에 비해 왜 경쟁력이 크게 뒤처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매출채권 사기대출 사건을 보면 시스템은 없고 개인만 등장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한마디로 조직역량을 체계적으로 축적시키기 위한 노력 자체가 부족하다.
모뉴엘 사태만 해도 매출액 대비 턱없이 높은 매출채권 비중, 매출액 대비 극히 적은 현금 유입, 업황과는 따로 노는 성장률 등 이상징후를 시사하는 지표가 많았다. 더구나 불과 수개월 전인 올 초에 비슷한 사건인 KT ENS 협력업체 사기대출이 발생했지만 은행들은 위기 전조를 또 놓쳤다. 대출보증서를 끊었고 대기업의 변제능력을 믿었다고 항변한다고 주먹구구식 관리가 숨겨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한 뱅커는 "요행히 리스크를 피한 은행도 여신관리 시스템이 특출났다기보다는 해당 여신 담당 직원이 똘똘했기 때문"이라며 "국내 은행의 관리 시스템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대출 문제가 발생하면 인사 조치를 단행하는 식의 직원 징계로 일단락 짓는 관행이 이어지다 보니 조직의 역량을 축적할 기회는 잃고 보신주의만 득세하게 된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이참에 여신 분야 체크리스트를 대대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직원의 머릿속에 있는 노하우와 경험들을 다 게워내 조직의 자산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더 고민했으면 한다.
만약 모뉴엘이 준 호기마저 놓친다면 매출채권 분야는 사기꾼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얄궂게도 이 정부는 기술금융에 대한 대대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실수를 자산으로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