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가장 기다리는 건 뭐니 뭐니 해도 휴가다. 특히 야근, 휴일근무를 밥 먹듯 하는 허울만 주 5일제인 회사를 다니는 경우라면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나 다름없다. 휴식은 모두에게 중요한 요소지만 특히 젊은 세대가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편이 아닌가 싶다.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연봉이 지금보다 낮아져도 복지제도가 좋다면 이직하겠다’는 응답이 76%에 육박했다. 돈 조금 더 벌겠다고 밤낮없이 일만 하지는 않겠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좋은 회사=연봉 높은 회사’라는 공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된 셈이다.
매년 연초가 되면 ‘올해는 공휴일이 며칠’이라는 기사가 쏟아진다. 작년보다 며칠 더 늘었네, 며칠 더 줄었네 라는 식의 판에 박힌 내용이지만 관심이 쏠리곤 한다. 직장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황금연휴’를 이용해 더 잘 쉴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마련 아닌가. 1년 내내 달력만 뚫어져라 보는 직장인의 입장에서 보면 예정에 없던 임시 공휴일은 ‘안 긁은 복권’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관공서를 제외하고 임시 공휴일 휴무는 권고사항일 뿐이다. 따라서 쉬느냐 마느냐가 각 회사의 재량에 달려있다. 철저히 이런 관점에서만(공휴일을 반기는 임직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휴식에 목마른 직원에게 좋은 회사는 쉬는 회사, 나쁜 회사는 안 쉬는 회사다. 그런데 나쁜 회사보다 더 나쁜 회사가 있다고 한다. 바로 줬다가 빼앗는(쉴 것처럼 굴다가 안 쉬는) 치사한 회사다.
행동경제학의 대가인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n)은 ‘손실 회피 효과’(Loss aversion effect)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무엇인가를 얻음으로써 느끼는 뿌듯함보다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득을 본 것보다 손해를 봤을 때의 감각에 더 선명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카네만의 해석이다. 그에 따르면 휴일을 줬다가 빼앗는 회사는 직원의 손실 지각을 더욱 극대화하는 케이스에 속한다. 심지어 요즘 들어서는 기업마다 ‘비상경영’이 유행이다. 예전 같으면 금요일에 휴가를 붙여서 ‘여행을 떠나라’고 했을 판에,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출근하는 자세를 보여라’며 충성을 강요하는 식이다. ‘쉴 테면 쉬어봐라’면서 눈치를 주는 조직도 그 행태가 다르지 않다. ‘여러분은 휴가 가라, 나는 출근할 테니까’라는 상사의 처신은 간이 큰 부하가 아니라면 좀처럼 외면하기 어렵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자리 뺄’ 각오를 하고 휴가를 가겠는가. 그러나 ‘휴가 박탈’이 유발한 짜증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기 어렵다. 얼마 전 국내 대기업 임원을 역임한 어느 프랑스인이 한국의 ‘미친 회사’에 대해 고발한 바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학교, 군대와 정서적으로 너무 닮아 있어서 휴가를 줬다 뺏거나, 줄듯 말듯 기만하는 비합리적이고 위압적인 문화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치사하게 휴가를 두고서도 설왕설래하는 조직이 직원들에게 신뢰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공휴일이 더 바빠서 쉴 수 없는 회사라면, 업무가 밀려 직원에게 휴가 주기 자체가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쉴 수 없다고 못 박는 게 낫다. 모름지기 휴가란 기대보다 박탈 때의 실망이 더 큰 법. 그러니 쉬기로 결정했다면 편하게 쉬자. 팀장은 나올 테니 팀원은 알아서 해라는 치사한 행동은 절대 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