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위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신청을 냄에 따라 뉴욕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휩싸이게 됐다.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구제금융을 은근히 기다리며 리먼과 관련된 파생상품을 쥐고 있던 투자자들이 휴일인 13ㆍ14일에도 대량으로 쏟아냈다. 리먼은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15일 파산보호신청을 뉴욕 서던지구의 파산법원에 냈다. 뉴욕 월가 금융기관들과 미 금융당국은 ‘리먼 파산 쇼크’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몰고 올 쓰나미를 막기 위해 대규모 방어벽을 쌓고 있다. 주말 동안 리먼 매각 협상을 숨죽여 지켜보던 월가 금융기관들은 협상이 결렬되자 비교적 건실한 JP모건과 골드만삭스가 주동이 되고 10개 은행들이 참여해 700억달러의 긴급 협조융자 자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만큼 월가의 팽배한 위기감을 보여준다. 시장이 붕괴되면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이들 은행은 각각 70억달러의 자금을 펀드에 투입, 리먼의 파산으로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할 방침이지만 시장 참여자들이 리먼과 메릴린치 쇼크를 극복할지는 미지수다. FRB도 신속한 시장대책을 내놓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며 16일로 예정된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극심한 혼란과 공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에서 온갖 종류의 대혼란(chaos)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는 한 헤지펀드 매니저의 발언을 전했다. 카를로스 멘데스 ICP캐피털 이사는 “금융시장은 청산의 시장이 될 것”이라며 “극장에 화재가 발생, 비상벨이 울리면 관객들은 일제히 출구로 달려갈 것”이라며 대혼란을 우려했다. 국제스와프파생협회(ISDA)는 일요일인 14일 오후2시부터 6시까지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등 파생상품 거래를 한시적으로 거래하는 긴급 조치를 발동하기도 했다. 이튿날인 15일 뉴욕 시장이 열렸을 때의 극심한 투매로 인한 대혼란을 조금이라고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일요일로 14일 뉴욕시장은 열리지 않았으나 다우지수 선물은 전날보다 300포인트 이상 폭락했고 싱가포르에서 거래된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선물지수는 이날 2.5% 주저앉았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15일 주가가 과다하게 폭락할 경우 모종의 비상대책을 강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던 달러 가치도 미 금융위기가 고조되면서 폭락했다.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으로 일제히 도피하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자극해 엔화 가치는 지난주 말에 비해 2%가량 폭등, 금융시장 패닉에 대한 우려감을 키웠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금융시장의 붕괴는 이제 피할 길이 없다”며 특유의 비관론을 던졌고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현재의 금융위기는 100년 만에 한번 올 수 있는 사건”이라며 “위기가 해결되기 전까지 더 많은 대형 은행들이 문을 닫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포천은 “재무부와 FRB가 직간접 지원했음에도 리먼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며 “과거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식 관치금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월가는 미 금융당국이 리먼을 포기한 데 대해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리먼의 붕괴는 자칫 월가 대형 금융기관의 도미노 붕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이 리먼 파산을 절대로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리먼의 청산은 ‘제2의 리먼’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위기감으로 연결되며 이는 무차별적인 자금회수와 자산투매 등 패닉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FRB와 월가 은행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자 금융시장의 혼란이 단기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없지는 않다.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자산운용 회장은 “금융주가 드디어 바닥에 도달했다”며 “리먼의 청산과 메릴린치 피인수는 글로벌 금융시장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소식”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뉴욕=권구찬특파원 chan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