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노치용 KB투자증권 사장

학군단 생활·현대 입사 등… 아버지가 인생 방향 잡아줘<br>올드팝부터 최신 노래까지 따라부를만큼 음악 애호가<br>변화 받아들여야 조직 발전… 회사 자부심 갖고 열정 쏟길



"마이웨이 아니더라도 맡은 일에 최선
성실함이 수장까지 오른 비결이죠"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은 계속된 좌절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유를 찾아 탈출을 시도한다. 지금 있는 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은 그곳이 싫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노치용(61ㆍ사진) KB투자증권 사장이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로 빠삐용을 꼽으며 자신을 빠삐용과 같은 사람이라고 설명한 것은 의외였다. 스스로를 빠삐용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한 평생을 샐러리맨으로 성실하게 살았으며 금융회사의 수장에까지 오른 사람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탈출하고 싶어한다는 뜻 아닌가.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을 것 같은 그의 인생과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는 빠삐용은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이어지는 그의 인생사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그의 말에 수긍이 갔다.

노 사장과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 중 자신의 뜻대로만 인생을 개척해온 사람은 별로 없다. 그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의 삶에서 중요한 결정의 길목길목마다 꼭 아버지가 있었다.

노 사장은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두 가지 선택으로 '학군단 활동'과 '현대그룹 입사'를 들었다. 둘 모두 자신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따른 선택이었다.

"대학 시절 장발이 유행이어서 머리를 기르고 싶었습니다. 학군단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은 확고했다. 당시 노 사장의 아버지는 '장교로 가면 자존심을 세우고 지도력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네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를 반강제로 설득했다.

1977년 현대건설에 입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처음부터 현대그룹에 들어가려고 마음 먹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마치고 군에서 장교로 생활했던 만큼 그를 찾는 기업도 많았다.

"당시 몇 개 기업에서 면접을 봤는데 면접장의 분위기가 크게 달랐습니다. 그때도 현대그룹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다른 기업에 비해 다소 자유로운 분위기였는데 어린 나이에는 그게 좀 산만하게 보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규율이 갖춰진 기업에 가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노 사장 인생의 방향을 잡아준 것은 아버지였다. 그는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선친께서 시인으로도 활동하셨는데 고(故) 정주영 회장이 주최한 문인 모임에 참석해 정 회장을 만나고 오더니 괜찮은 분이라며 현대 입사를 권유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노 사장의 인생은 어쩌면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흘러왔다. 다만 노 사장은 타의든 자의든 한번 발을 들여놓은 곳에서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진부한 말이지만 노 사장이 스스로 운이라고 밝힐 정도로 특출한 재주나 특별한 배경 없이도 한 조직의 수장에까지 오른 것은 바로 평범하면서도 강력한 무기인 성실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1992년 잠시 기업을 떠나 국민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하던 시절과 현대증권에서 바이코리아 사업 본부장을 할 당시에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일이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출근길이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이처럼 열정을 가지고 일했기에 그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책 제목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민당 부대변인으로 있던 시절과 바이코리아 본부장으로 있던 당시 처음과 달리 끝으로 갈수록 상황이 안 좋아지기는 했지만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 인생에서 시련은 있었지만 실패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노 사장의 삶의 궤적은 그의 경영 철학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노 사장이 평소 직원에게 강조하는 것이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다. 다만 노 사장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눈에 보이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따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노 사장의 이러한 생각은 KB투자증권 조직의 변화로 이어졌다. 그가 처음 KB투자증권에 왔을 당시 한 달에 평균 20~30명의 직원이 조직을 떠났다고 한다. 이전에 31년간 몸담았던 현대그룹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 회사가 한낱 스치고 지나가는 정거장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죠. 그래서 본부장을 모아놓고 나가는 직원을 최선을 다해서 붙잡고 그래도 나가면 어쩔 수 없지만 인원 보충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윗사람들이 조직에 대한 애정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다 보니 이후로는 퇴사하는 인원이 크게 줄어들었고 조직이 안정화된 후에는 필요한 인원을 충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노 사장이 조직 안정화를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증권사는 은행과 달리 항상 큰 위험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구성원이 똘똘 뭉쳐 신속하게 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 사장의 노력 덕분에 취임 당시 280명이던 KB투자증권 직원은 현재 460명까지 늘어났다.


노 사장은 격식과 겉치레도 싫어한다. 아들 둘을 장가보낼 때는 사돈 집안이 뭐 하는 사람인지, 사는 곳이 어딘지 묻지도 않았을 정도다.

관련기사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현대그룹에서 31년간 근무했던 경험과 아버지의 가르침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반복적으로 하셨던 말씀 중 '시냇물이 시끄럽게 흐르지, 큰 강물은 조용히 흐른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경영자로서 이 말의 의미를 많이 생각합니다."

그는 지난 2010년 KB투자증권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체육대회를 없앴다. 준비할 건 많은 체육대회가 실상은 일부만 참여하는 전형적인 보여주기 식 행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직원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니 70%가 반대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망설임 없이 없애라는 지시를 내렸다.

연례 행사인 '호프 데이' 문화도 바꿨다. "매년 호프 데이를 개최하는데 실제 가보니 본부장이나 팀장이 직원과 어울리지 않고 얼굴만 비치면서 생색만 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부장이나 팀장에게 그 시간만큼은 직원과 어울리고 자신을 내려놓으라고 말했습니다."

노 사장이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아랫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아무리 편하게 말을 하더라도 어려워하기 때문에 윗사람이 조금 더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노 사장은 "이제는 직원들도 사장이 지향하는 바와 성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조직이 변한 것 같다"며 최근 KB투자증권 조직의 변화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직원에게 주문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 스스로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노 사장은 음악ㆍ영화 등 예술을 사랑한다. 그 중에서도 음악은 옛날 올드팝부터 최신 노래까지 두루두루 섭렵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윤하가 부른 '서쪽 하늘'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고 한다.

"최신 유행하는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에게도 과거 1970~1980년대 부르던 노래만 부르지 말고 최소한 1년에 한 곡은 새 노래를 배우라고 조언합니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데 임원은 그러면 안 됩니다.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면 변한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조직의 리더는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까요."

3년간 KB투자증권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노 사장에게 직원들에게 마지막으로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개그맨 이경규씨는 '개그맨은 나의 먹고 살기 위한 방편, 즉 직업이고 영화는 자기의 꿈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에 공감합니다. 현실적으로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직업을 가지면 그 일에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간직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도 오게 됩니다. 우리 직원들도 그런 마음으로 자기 자신과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기를 바랍니다."

■ 취임 3년 경영성과

DCM 2년째 1위… MTS 중심 리테일사업도 안정세


고병기기자

"최근 몇 년 새 조직이 안정화됐고 홀세일 영업력이 자리를 잡았으며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중심의 리테일 전략이 현재까지는 잘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취임 이후 최고경영자(CEO)로서 평가해본다면 80점 정도가 적당할 듯합니다."

노 사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취임 3년간의 경영 성광에 스스로 '우' 정도의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객관적인 지표를 놓고 보면 겸손함이 묻어 있다는 점을 금세 알 수 있다. 블룸버그의 집계에 따르면 KB투자증권은 기업금융 채권발행시장(DCM) 부문에서 지난 2011년과 지난해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올해 1ㆍ4분기 역시 1위를 차지했으며 3년 연속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노 사장 취임 전에는 업계 3위 수준이었다. 전체 법인영업 부문은 현재 업계 5위까지 성장했다.

또 2009년부터 시작한 리테일 사업의 경우 초기 몇 년간은 수익보다 투자가 많았으나 차츰 안정을 찾고 있다. 특히 리테일 사업의 경우 취임 당시 회사 내부에서는 오프라인 영업점을 늘리는 방식으로 리테일을 강화하려고 했지만 노 사장은 오프라인 영업점의 미래가 어둡다고 판단해 MTS 중심의 리테일 영업 전략을 주장했다.

노 사장은 "당시 회사 경영진을 설득하는 데만 8개월의 시간이 걸렸지만 고위층이 결국 내 뜻을 이해해줘 고마움을 느꼈다"며 "이제는 금융상품도 전부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모바일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어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장으로서 리테일 부문에서 KB투자증권에 기여한 것은 MTS 중심의 영업 전략을 수립한 것 한 가지"라며 "조직의 리더는 자기만의 방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고 결과가 잘못되면 이에 대해 책임을 지면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노 사장은 KB투자증권이 몇 번의 인수합병(M&A) 기회를 놓쳐 한 단계 더 도약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제조업은 하나만 집중해서 키우면 크게 성장할 수 있지만 금융업은 자생적ㆍ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가 제대로 갖추고 도매와 소매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M&A가 최적의 방안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노 사장은 M&A를 통한 회사의 성장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M&A) 기회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면서 "중소형은 물론이고 대형 증권사도 한계를 느끼고 있을 정도로 업종 자체가 한계에 직면한 만큼 향후 우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곳을 면밀히 검토해 적절한 가격에 M&A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노치용 사장은

▲1952년 서울 ▲1971년 경기고 졸업 ▲1975년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졸업 ▲1977년 현대건설 입사 ▲1993년 현대전자 홍보부장 ▲1997년 현대증권 기업금융본부ㆍ법인영업본부 본부장 ▲1999년 현대증권 바이코리아 사업본부 본부장 ▲2000년 현대증권 홍보본부 본부장 ▲2002년 현대증권 금융상품본부ㆍ도매영업부문 본부장 ▲2003년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홍보실장 ▲2005년 현대증권 IB기획본부 본부장 ▲2007년 현대증권 도소매 영업총괄 부사장 ▲2008년 산은캐피탈 사장 ▲2010년 KB투자증권 사장


고병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