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고] 대선자금수사의 전제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면서 일반 국민들은 여러 매체에 얼굴을 내밀며 각자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혼선 속에 마감된 지난해의 기억을 떨쳐버리고 환한 웃음으로 새해를 시작하려는 국민들의 기지개가 새해를 맞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눈물겹게 보듬어 안는 듯하다. 하지만 상호 비방과 뒤늦은 자금수수 인정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정치권에 거는 희망은 어느 때보다 희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백성이 왕을 모르고 사는 시대를 요순시대라고 하였건만 지금은 국민이 최고통치기구인 대통령ㆍ국회를 심각할 정도로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국민의 복리에 관한 정책보다는 권력을 두고 정쟁을 일삼아온 우리나라 정치역사의 필연적 산물이 이 시대에 또다시젿?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반 국민들은 죽어라고 경제회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지금 또다시 극한투쟁의 양상이 새해 벽두부터 지나간 해의 악몽처럼 국민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면 이는 또 다른 악몽의 악순환을 야기할 것이다. 현재 정치권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위법하게 모집한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이다. 현 대통령이나 원내 최고야당, 여당을 가릴 것 없이 이리저리 연루돼 엮여져 나오는 피의사실이 심히 당혹을 느끼게 한다. 만일 그러한 사실들이 진정 실체적 진실이라면 이는 반드시 우리나라의 장래 정치문화 개혁을 위해 철저히 수사하고 엄중한 처벌로써 그 족적을 남겨 향후 선거자금을 포함한 일체의 불법 정치자금 모금이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대상 중 자금 공여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대 회사 등 기업에 집중돼 있다. 기업들에 대한 정치권의 자금 요구는 어제오늘만 있었던 일이 아니었으므로 반드시 근원을 찾아 발본색원해야 한다. 다만 무한경쟁이라는 국제적 경제전쟁이 눈에 보이게 나타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기업에 대한 수사는 불법자금의 근원 제거와 국가경제의 발전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적절히 조화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지난 연말 검찰총장은 신년사를 통해 원칙대로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밝혔다. 올초부터 각 거대 기업들의 고위 임원 및 총수까지도 필요하다면 모두 소환한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미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생각한다면 언어도단이다. 경제를 살리고 정치개혁도 이루는 방도를 찾아야 하는 이율배반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수사기관인 검찰이 수사의 로드맵을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는 수사의 기밀사항을 미리 모조리 드러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사의 대상범위 및 한계를 국민 앞에 밝히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치권은 검찰의 수사에 대해 검찰 스스로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범법행위를 한다고 정치적 공세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검찰대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단서가 발견될 때마다 수사대상 및 피의사실 중 자금의 규모를 즉시 언론에 공개하는 방법으로 맞서오고 있다. 향후 아무리 검찰이 중립적인 사정기관으로서 그 임무를 다하기에 벅찬 현실임을 감안하더라도 사실상 유죄추정의 편견 아래 형이 확정되기도 전에 국내기업들이 범죄기업으로 간주돼버린다면, 그나마 회생의 몸짓을 하고 있는 국가경제는 새순마저 시들어버릴 우려가 있다. 거기에다 늘 반복되는 피의사실 공표에 국민들이 검찰에 대한 신선한 충격마저 잃어버린다면 향후 국민으로부터 파생된 정치냉소주의는 국회의원 총선거라는 올해의 중대 사안이 국민의 외면 속에 불법으로 모금된 선거자금으로 인해 오염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불법 대선자금 문제를 조속히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왔으므로 검찰은 기업에 대한 각종 방법의 수사에 앞서 경제에 타격이 덜 가도록 전반적인 수사의 로드맵을 밝히고, 피의사실 공표 등을 통해 여론을 등에 업기보다는 떳떳하게 수사의 범위와 한계를 밝혀 국민의 신뢰와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 후 단기간 동안 철저히 수사해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부분과 혐의가 인정돼 공판을 청구해야 할 부분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불법 정치자금은 이렇듯 확실하게 처리된다는 모범기준을 역사에 남겨야 할 것이다. 새해는 밝았고, 우리 국민들의 앞길은 새해의 태양과 구름기둥이 인도하기 시작했다. 검찰의 지혜 있는 결단을 기대해본다. <김성기 (법무법인 CHL 대표변호사, 전 서울변협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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