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그가 수술 칼 내려놓고 정치에 뛰어든 까닭은

■ 마하티르 수상이 된 외과의사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지음, 동아시아 펴냄)<br>'말레이시아판 박정희' 불구 의사 출신 세계 3대 지도자에<br>철학·삶 자세히 담은 자서전 "한국 경제모델서 많은 것 배워"



1925년7월10일 말레이시아 북부 알로스타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87ㆍ사진)는 싱가포르 킹에드워드 7세 의과대학을 졸업한 외과의사였다. 인생의 경로를 바꿔 정치에 뛰어든 그는 낙선하기도 했고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 툰쿠에 반기를 든 죄로 집권 여당에서 축출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국가의 모순과 해결방안을 직시한 저서 '말레이 딜레마' 등으로 민족의 문제와 정면 대결하면서 일약 차세대 정치 지도자로 떠올랐다.

마침내 마하티르는 1981년 총리로 등극했고 다섯 번의 연임을 통해 2003년까지 무려 22년간 제4대 말레이시아 총리이자 역대 최장수 총리를 역임했다. 그는 장기집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최고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고 후진 농업국가였던 말레이시아를 무역 대국으로 끌어올린 공로로 '말레이시아 근대화의 아버지', '국부(國父)'로 불린다. 중국의 손문, 쿠바의 체 게바라와 함께 마하티르는 '의사 출신의 세계 3대 지도자'로도 꼽힌다.

이 책은 총리직을 마감하고 은퇴한 그가 인생의 역작으로 쓴 자서전. 지난해 초 현지 출간돼 이번에 792쪽에 달하는 번역본으로 나온 이 책에는 마하티르의 철학과 생이 꼼꼼하게 담겼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농업국이었던 말레이시아에서 산업화ㆍ현대화를 추구해 '말레이시아판 박정희'로 통한다. 22년의 독재와 국가의 미래상 제시라는 극단적인 평가 역시 박 전 대통령과 닮아있다. 마하티르는 산업대국으로 갓 발돋움 한 일본과 한국을 경제모델로 삼은 '동방정책'을 내세웠다. 특히 그는 "한국인들은 우리에게 낙후된 나라가 훌륭한 산업 국가로 도약을 할 수 있는 가장 최신의 모델을 제시한 셈"이라며 "산업화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견해도 책 속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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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미국과 신자본주의에 맞서 '아시아적 가치'를 강조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철학과 궤를 같이 한다. 서방세계와 제3세계 사이에서 절묘한 외교력을 발휘한 것도 마찬가지. 더불어 뿌리 깊은 종족 간 갈등을 봉합하고 말레이시아를 성숙한 이슬람 국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게 한 것도 그의 업적으로 평가된다.

그런가 하면 "화교의 경제적 지배에서 짓눌렸다"고 비난했다가 말레이시아의 독립 운동가이자 초대 총리인 툰쿠 압둘 라흐만에 의해 출당되는 장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감함과 겹쳐지는 대목이다.

마하티르의 통치력이 특히 돋보였던 것은 1997년 IMF 경제 위기 때였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IMF 모범생'으로 불린 대한민국과는 정반대인 '고정환율제'를 택했고 긴축재정 대신 독자적 금리인하를 강행했다. '무식한 정책'이라는 비난을 감수한 그의 독자 노선은 결국 위기 극복이라는 성공을 안겼다.

물론 그의 통치 기간에 불거진 인권과 민주화 문제에 대한 비판, 그가 구축한 권위주의 체제 때문에 민주주의 전통이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2003년 당시 부총리였던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에게 총리를 넘겨주고 물러난 '결단'은 대선을 앞둔 국내 정치계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2만8,0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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