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어머니와 떨어져 있던 왕씨에게 지난 2010년 희소식이 날아왔다. 왕씨 어머니가 남편을 설득해 본국에 있는 딸을 데려올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왕씨는 몇 달 뒤 들뜬 마음을 안고 새 아버지의 나라 한국땅을 밟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엄마와 함께 살 수 있게 됐다는 부푼 꿈이 수많은 장벽의 그늘에 가려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왕씨처럼 한국인 남성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중도입국자녀'가 늘면서 이들 중도입국자녀를 둘러싼 여러 사회 문제가 새삼 주목 받고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가 사회의 차별적 시선으로 힘들어 하는 사이 중도입국자녀는 이에 더해 언어 장벽에 따른 진학·취업의 어려움, 가족 융화 문제까지 겹쳐져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10일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등에 따르면 중도입국자녀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6,652명에 이른다. 어머니가 귀화 신청을 하지 않아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경우 등을 고려하면 전체 숫자는 1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한족이나 조선족 출신 중국인은 90% 이상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6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표본집단 403명을 추출해 시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중도입국자녀 중 27.3%를 차지하는 17~19세 자녀의 경우 63.3%가 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38.2% 비중인 20세 이상 자녀의 경우는 무려 81.7%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있었다.
이들 중도입국자녀는 고용 안정이 보장되는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도 쉽지 않다. 왕씨 역시 대학 캠퍼스 생활을 그리며 공부에 매진해야 할 나이지만 실제로는 공장ㆍ미용실 등 생활 전선을 떠돌고 있다. '언어적 한계에 따른 국적 취득의 어려움→체류 신분 불안정→진학 및 취업 애로'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새 아버지나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소외감도 이들에게 큰 짐이다. 왕씨는 "한국에 들어오라는 엄마의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며 "아버지와 엄마가 다툼을 할 때면 괜히 내가 위축돼 방구석으로 숨곤 한다"고 하소연했다.
베트남 출신의 타이뜨넝(18ㆍ가명)씨도 "언어 장벽이 없어도 가족들과 섞이기가 쉽지 않을 판에 한국말까지 서투니 거리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중도입국자녀를 관리하는 정부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혼이민여성 관련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중도입국자녀의 초기 적응을 돕기 위해 전국 10곳에서 4개월 과정으로 '레인보우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고용부는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홍보가 부족하고 성과도 뚜렷하지 않은 실정이다. 양계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겹겹이 쌓인 고민으로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중도입국자녀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일괄적으로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