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이 다시 1,500원대를 훌쩍 넘어서자 정부의 발걸음이 부쩍 빨라졌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이례적으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환시(換市) 안정책을 긴급 논의하는 한편 엔화표시채권인 사무라이본드 발행을 위한 사전준비를 시작하고 우리은행을 시발로 시중은행도 본격적으로 외화차입에 나서는 등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들 청와대 집결=정부는 환율이 고공비행하는 와중에도 구두개입에만 머문 채 직접적 개입을 극도로 자제해왔다. 섣부른 액션으로 부작용을 초래한 전임 경제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정부가 이번주를 계기로 확연히 달라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외환당국 핵심관계자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컨틴전시 플랜을 준비하고 있다(본지 24일자 1면 참조)”고 밝힌 지 하루 만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진동수 금융위원장,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 등 금융당국 수장들이 청와대 서별관에 집결했다. 외환시장안정대책이 경제금융대책회의(서별관회의) 안건에 오른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이 자리에서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장단기 대책들이 포괄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윤 장관이 환율은 가급적 시장에 맡긴다는 입장을 보인 만큼 적극적인 시장개입대책보다 외화유동성 확대를 위한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어떤 형식으로든 환시안정을 위한 후속대책들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언급, 머지않은 시간에 정부 대책이 나올 것임을 내비쳤다.
◇외화 끌어들이기 위한 액션 본격 착수=외화유동성을 늘리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선 재정부는 오는 27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ㆍ기업은행ㆍ석유공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일본에서 투자설명회(IR)를 개최한다. IR에서 바로 엔화표시채권인 사무라이본드 발행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시장태핑(사전 수요조사)은 이뤄질 예정이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일본 은행들이 3월 결산이기 때문에 발행은 4월께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지난해 320억엔의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했고 수출입은행은 지난 2007년 350억엔을 발행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은행들이 엔을 달러로 스와핑해 사용하기 때문에 사무라이본드 발행이 외화유동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의 ‘외면’을 받았던 정부 지급보증을 통한 외화차입도 3월부터 시작된다. 현재 우리은행이 정부와 지급보증 계약 내용에 대해 협의하고 있으며 3월 중 공식적으로 외화차입을 할 계획이다.
경영권 개입과 높은 지급수수료율로 지급보증을 통한 외화차입을 꺼리던 은행들이 외화차입에 본격 나서는 것은 그만큼 정부의 압박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부는 18일 대외채무 지급보증 수수료율을 1%에서 0.7%로 낮추고 보증기간도 최대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은행들의 외화차입을 독려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해외차입 요건 중 하나인 은행들의 결산실적이 3월 중순에 나오면 지급보증을 통한 은행들의 외화차입이 늘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