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무상 술자리가 잦아 평균 주 5회가량 술을 마시는 제약회사 영업사원 김정식(가명ㆍ35)씨는 최근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문제는 언제 잃어버렸는지, 어떻게 귀가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름이 끊기는 이른바 블랙아웃 현상을 자주 겪은 김씨는 '혹여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술자리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고민 끝에 병원을 찾은 김씨는 알코올성 치매라는 진단을 듣고 깜짝 놀랐다.
노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질환인 치매가 젊은 층에까지 확산돼 30~40대 중년층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주된 원인은 과도한 음주로 알코올성 치매를 방치할 경우 노인성 치매로까지 악화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계 치매의 날인 2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치매환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6년 8만여명에 불과한 치매환자 수는 지난해 25만여명으로 최근 5년 새 3배가량 급증했다. 80세 이상 초고령 치매환자가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치매환자가 급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문제는 사회적 활동을 왕성히 해야 하는 30~40대 환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06년 876명이던 30~40대 치매환자 수는 지난해 1,221명으로 5년 새 40%가량 증가했다.
젊은 층 치매의 주된 원인은 술이다.
최경규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알코올성 치매는 알코올 과다 섭취로 우리 뇌의 기억 전반을 담당하는 해마가 손상을 입으면서 발생한다"며 "초기에는 뇌 기능에만 문제가 생길 뿐 구조에는 변화가 없지만 뇌 손상이 반복될 경우 뇌가 쪼그라들고 뇌 중앙에 위치한 뇌실이 넓어지면서 알코올성 치매로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음주를 즐기는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알코올성 치매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알코올성 치매는 진행속도가 매우 빠르고 증상을 방치할 경우 짧은 기간에 노인성 치매로 발전할 수 있다"며 "알코올성 치매의 증상과 특징을 숙지하고 자신의 음주습관과 비교함으로써 자가진단을 해보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일단 음주 후 지난밤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어떻게 귀가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블랙아웃 현상이 잦거나 1년 이상 지속될 경우 알코올성 치매를 의심해볼 수 있다.
알코올성 치매의 또 다른 문제는 폭력성이 증가된다는 것이다. 뇌에서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기관인 전두엽이 술을 섭취하면 가장 먼저 손상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누구나 알코올성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과음을 한 뒤에는 3일 이내에 술을 먹지 않는 등 올바른 음주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음주 때 물을 자주 먹고 과일ㆍ야채 등 수분이 많이 함유된 안주 섭취를 늘리되 흡연은 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