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도미노… 지구촌 홍역중남미와 동유럽, 아시아 등 신흥시장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미국 증시는 연일 급락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속화되고 있다.
또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해왔던 정보기술(IT) 산업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으며, 무역 블록화를 통한 신보호주의 대두로 자유무역 확대를 통한 경기 침체 방어도 갈수록 어렵게 됐다.
이처럼 최근 들어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지만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은 경기 침체와 금융시장 불안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면서 구체적인 경기회복 방안을 도출하지 못해 세계 경제는 갈수록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 미국만 쳐다보는 천수답 세계 경제
한 미국의 역할 제고를 한 목소리로 촉구했다. 이탈리아의 질리오 트레몬티 재무장관은 "유럽 경제는 미국에 일정 부문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폴 마틴 캐나다 재무장관은 "캐나다 경제가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고 언급했다. 한마디로 미국 경제의 회복 외에 별다른 대안은 없다는 고백인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의 경기 회복 가능성이 갈수록 희박해 지고 있다는 데 있다.
폴 오닐 미 재무부장관은 "미국 경제가 오는 4ㆍ4분기에 2% 이상 성장하고 내년에는 3%대의 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지만 스스로도 불안한 듯 연일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세계 경기 회복에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에 대해서는 경제구조 개혁과 관련한 시간표까지 요구하고 있다.
◆ 경기 둔화 현상 도미노
부시 행정부는 아직까지 미국 경제 회복에 대해 낙관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IT산업 불황을 필두로 하는 경기 둔화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까지 홍역을 앓게 하고 있다.
실제 유럽 경제는 해외 수요 감소로 수출이 주춤거리고 있고 제조업 구매지수는 2년래 최저치로 주저앉은 상태다. 또 지난 6월 소비자신뢰지수가 전달의 101.7에서 101.2로 떨어지는 등 유럽 경제를 떠받쳐주던 소비자 동태마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는 유럽보다 경기 침체의 징후가 더욱 짙게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 타이, 타이완의 실질 GDP는 감소했고, 지난해 각각 9%와 10%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한국과 홍콩 역시 올해 2~3%의 성장률을 기록하는데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아시아는 IT산업 불황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아시아는 지난해 GDP 성장의 40%를 미국에 대한 정보기술 제품 수출에 의존하는 등 미국 시장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데, 최근 미국의 투자붐이 끝나고 컴퓨터와 전자제품의 신규 수요도 3분의 1로 줄어 들어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 점증되는 금융시장 불안
지난 6일 아르헨티나와 터키의 경제위기설이 고조되자 브라질ㆍ헝가리ㆍ폴란드ㆍ필리핀 등 신흥시장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일제히 하락했다.
특히 아르헨티나가 외채를 갚지 못하는 국가부도(디폴트) 사태에 직면하고 고정환율제를 포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중남미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이처럼 이머징마켓의 금융시장이 재차 위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을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국의 자금시장으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유럽의 금융시장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다. 최근 유로화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투자자들 역시 유럽 증시에서 자금을 빼 미국 자금시장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미국에 대한 자금 유입 러시로 달러화가 더욱 강해지면 미국의 수출 가격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지는 등 제조업 부분이 타격을 받아 자칫 경기 둔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 난산 겪고 있는 경기부양책
미국, EU,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이머징마켓의 국가들도 세계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한 해법 모색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로선 뾰족한 대안이 없는데다 경기 둔화에 대응하는 입장도 달라 난항을 겪고 있다. 위기는 점증하고 있는 반면 해법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회복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은 유럽과 일본도 세계 경제 회복에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유럽은 인플레를 우려, 금리인하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세계 경기 둔화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며 책임 소재까지 거론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은 자국의 이해를 위해 무역 블록화를 강화하고 있으며 GE의 하니웰 인수 등 대기업의 M&A에서도 사사건건 부딪히고 있어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한 해법 모색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정구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