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대응, 소프트웨어가 없다.’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를 0.75%포인트 전격 인하한 27일. 특단의 대책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예전에 이 정도면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현재는) 기관 뿐 아니라 개인도 덩달아 투매에 나서고 있다. 적어도 (한은 발표 이후) 기술적 반등이라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평소 가까운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그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하드웨어를 잘 갖췄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구비하지 못한 것이 이유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사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의 위기대응 하드웨어는 놀라운 발전을 이루게 된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의 예금보호 제도는 금융 선진국인 미국ㆍ영국보다 한 단계 위다. 부실채권을 처리할 수 있는 공적 기관도 있으며 구제금융에서도 적지 않은 노하우를 갖고 있다.
외환위기 때 만들어져 현재까지 운영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전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법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정부는 컨틴전시 플랜도 수립했다. 현재 나오고 있는 위기대응 조치는 외환위기 때 만들어진 컨틴전시 플랜에 기초하고 있다.
문제는 겉모습은 갖춰놓았는데 정작 이를 운영할 소프트웨어는 등한시했다는 점이다. 위기발생시 어떻게 조직을 꾸리고 누가 컨트롤 하며 각 부처 간 정책공조는 어떻게 할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갖춰 놓지 않았다. 겉으로는 위기발생시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가 최고 의결기구 역할을 하도록 돼 있으나 현재 운영되는 모습을 보면 요식적 행사에 그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뒷북 조치’ ‘정책공조 미흡’ 등 정부의 정책을 놓고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지금 금융위기를 수습하면서 새로운 컨틴전시 플랜을 수립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도 과거처럼 하드웨어 개선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를 이끌 소프트웨어인데도 이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